진공의 세월
백수의 기록.3
박진
2012. 6. 20. 00:01
728x90
禍根
내가 집에 있어서 가족 간에 불화가 생기는 것 같다. 밥을 먹다가 '너가 이제 삼십대야'라는 말이 나오면 그때부터 두 어른은 혈압을 높이기 시작한다. 눈앞에 밥그릇만 내 시야를 가득 채우고 가볍게 말아쥔 주먹을 무릎위에 올려 놓는다. 하루 중 가장 숙연한 순간에 어울리는 자세다.
오랜만에 교차로를 뒤적이며 주말알바를 찾아봤다. 토익과 일본어시험만 지나면 주말에 여유가 생기기 때문이다. 주중엔 아침저녁 책상과 체육관에서 나를 다듬는다. 나 이렇게 땀흘리는데 저녁 좀 편하게 먹읍시다. 라는 말은 한 번도 해본 적 없다. 재수가 죄수이듯 취준생(취업준비생)은 쥐죽은 듯하다.
남은 밥을 재빨리 먹어치우고 슬그머니 방으로 들어왔다. 이어폰으로 귀를 막고 볼륨을 높인다. 두 분의 언성이 고공을 파고들고, 한참 뒤 잠잠해지면 다시 나가 설겆이를 한다. 결자해지인 셈이다. 고기반찬 덕에 기름진 그릇들을 어루만지며 두 번 행굼질 할 때 뽀도독 거리는 촉감에 가슴이 후련해진다.
누구나 겪는 일종의 나이테같은 시기라고 한다. 그 폭과 깊이는 밖에서 알 길이 없지만 누구나 그 속에 검은 띠를 겹겹이 새겨 놓고 있다. 내 속을 그을리는 뜨거운 통증도 시간이 지나면 나를 한 뼘 키워준 증거로 남을 것이다. 인생의 지문과도 같은 나이테가 화인(火印)처럼 새겨지고 있다.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