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지난해 12월 출장을 이유로 난생처음 인도네시아를 방문했다. 해외 사업은 만들지 못했지만, 여름 인턴십과 같은 여러 기획을 엮어 군불을 지폈고, 마침 해외건설협회의 시장개척지원사업에 선정돼 비용 부담도 덜어낸 끝에 얻은 결과였다. 여러모로 긴장한 첫 번째 출장과 달리 두 번째는 다양한 경험을 여럿이 함께 쌓는 기회로 삼고자 했다.
2.
충분히 준비했다고 생각해도 해외에서는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 짧은 일정 간 여러 곳을 방문하며 나는 출장의 결과물이 어떤 형태로 남을 수 있을까 고민했다. 경험의 확장과 내부 역량의 축적, 이른바 Globality라고 하는 번역하기 어려운 그것을 남기고 싶었다. 내가 표준이 아니라는 것, 시장의 눈은 나와봐야 안다는 것, 그리고 결국 밖에선 원팀이라는 것.
3.
자카르타에서의 일정을 서둘러 마치고, 신수도 건립현장을 찾아 비행길에 올랐다. 칼리만탄이라는 적도에 놓인 커다란 섬의 발릭파판 공항으로 날아가 다시 페리를 타고 프나잠이라는 곳으로 향했다. 최대 인프라 사업임을 뒷받침하려는 듯, 발릭파판만을 통해 수많은 바지선들이 골재와 석탄을 실어 나르고 있었다. 오래된 일본 배를 개조한 여객선을 타고 한 시간 남짓, 우리는 항구에 도착했다.
4.
많은 건설기업이 참여해 신수도 이전 예정지는 속속 그 형태를 갖추고 있었다. 안내소에 오르니 공사중인 도로 너머로 대통령궁, 정부부처공관, 공무원 숙소와 저 멀리 호텔 예정지까지 한눈에 들어왔다. 현지 직원은 이곳이 종이를 만들기 위해 심은 인공림이라는 사실을 힘주어 말했는데, 자연림을 훼손하지 않고 지속가능한 도시의 지향점을 말한 것이었다.
5.
올해 10월이 되면 새로 당선된 대통령의 집권이 작동하기 시작한다. 한 나라의 발전을 위하는 생각은 모두 같겠지만 어디에 중점을 두느냐에 따라 이런 인프라 사업은 힘을 얻어 추진되기도, 멈추기도 한다. 전직 대통령의 아들이 현 부통령이라는 안전장치가 얼마나 작동하는지는 모를 일이다. 한 나라의 메커니즘은 고위공직자 몇 명을 알고 있다고 알 수 있는 게 아닌 것 같다.
6.
많은 비와 낯익은 현지음식을 뒤로한 채 자카르타를 경유해 반둥으로 향했다. 아직 개통한 지 1년이 안된 고속철도를 타고 ITB에 가는 일정이었다. 기차표를 구매하기 위해 여권을 제시하고, 공항처럼 엑스레이로 짐 검색을 할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출입구 전광판에선 열차의 현재 속도를 보여주고 건너편 식사칸에선 승무원과 사진을 찍는 승객의 모습이 눈에 띄었다.
7.
비 온 날 ITB는 긴 시간 자연과 동화된 캠퍼스의 역사를 보여주었다. 크지 않은 캠퍼스를 한 바퀴 둘러보며 이런 곳에서 공부하는 상념에 잠시 빠졌다가 현실을 깨닫고 발을 동동 구르게 되기까지 얼마 걸리지 않았다. 돌아오는 열차 편이 매진되어 공항으로 달려가줄 기사를 찾고, 열악한 차량으로 쉼 없이 고속도로를 달려 데스크 철수 직전에 공항에 도착한 것은 오기가 만든 기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