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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내에게 육아휴일을 주겠다는 발상은 즉흥적이었다. 순간적으로 여러 어려운 상황이 그려졌지만, 그보다 이게 좋은 생각이라는 일념에 사로잡혀 주섬주섬 짐을 싸고 아기를 품에 안고 밖으로 나왔다. 분유와 온수통, 기저귀만 들고 5시간동안 아기와 놀러다닌 철없는 아빠는 그저 이건 좋은 생각이라고만 되뇌었다.
2.
오랜만에 만난 친구는 딸만 셋을 둔 아빠다. 출발 전에는 이것 저것 물어보고 싶은게 많았는데, 막상 아기와 지하철을 타고 나니 아무생각도 할 수 없었다. 모든 사물을 경계하고 스며오는 냄새와 불어오는 바람, 소리까지 막으려 했다. 그렇게 알 수 없는 기분으로 안고 있었고 아기를 자랑하듯 걷고 서 있었다.
3.
50분 걸려 도착한 두번째 약속장소에서 아기가 깼고, 나는 땀을 뻘뻘 흘리며 분유를 타 먹였다. 두꺼운 외투를 벗기니 아기도 땀에 젖어 있어 이런 고생을 왜 시켰나 후회했지만, 만나는 얼굴마다 아기를 향해 지어주는 기쁜 표정에 기분이 좋아져서 나도 모르게 다음에 또 보자고 약속 했다. 그땐 아내도 함께 보자고.
4.
아내는 집에서 새끼발가락을 다치는 바람에 동행하지 못한 터였다. 그 김에 푹 쉬라는 말도 듣지 않고 청소며 빨래며 집안일을 다 하고 나서야 마음이 편하다고 했다. 종종 이렇게 휴일이 있으면 좋겠다고 한다. 그런 날이야 얼마든지 만들어 줄 수 있지. 사실 내게 항상 그런 날을 주어서 고마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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