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첫 구매일이 2020년 7월 1일이고, 비몽사몽간에 마지막 페이지를 넘긴 게 2021년 2월 4일이니 꼬박 7개월이 걸린 여정이다. 새로운 직장에 적응하면서, 잘 써지지 않는 졸업논문을 적으며 틈틈이 읽었는데, 긴 호흡으로 함께 걸어온 덕에 부침없이 정착할 수 있었다. 저자가 밝혔듯 이 책에 실린 내용은 모두 어딘가에 공개되고 저자 스스로 인터뷰를 하며 빼곡히 채워간 이야기다. 부제인 [서울 격동의 50년과 나의 증언]이 잘 어울린다. 이런 장르, 대학시절 눈을 떼지 못하고 읽던 책이 떠오른다. 강준만의 [한국 현대사 산책] 독후감은 이 블로그 어딘가에 정성껏 적어둔 기억이 난다.
2.
저자가 정신적으로 완숙한 시점에 이 책을 출간한 때문인지 읽기 부담스럽지 않다. 짧지 않은 기간 직접 경험하고, 또 간접으로 [도시계획 전문가]의 시선으로 현실을 바라보며 딱딱하지 않게, 어딘가 편향되지도 않고 줄곧 비판적인 자세로 기록한다. 매 장이 신선하고, 내가 사는 동네, 일하고 있고 아침마다 뉴스가 되는 동네를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어 즐거웠다. 어떤 날은 이 책을 읽을 기대에 퇴근이 기다려지기도 했고, 기억에 남는 부분은 가족들에게 설명해주며 서울 도시계획 전도사를 자처했다. 이 책에서 다룬 내용은 어른이라고 모두 알고 있을 것 같지 않았다.
3.
가장 큰 소득은 이제 서울 시내 어느 동네도 전처럼 위화감이 들지 않는다는 점이다. 강남이 어떻고, 신도시가 어떻고, 학군이 어떻고, 위정자가 어떠하며 서울시란 어떤 곳인가를 보는 눈이 한꺼풀 벗겨진 듯, 한 뼘 멀리서, 한 층 위에서 바라보는 기분이다. 가장 아쉬운 점은, 서민들을 도시를 만드는 주체로 지면에 거의 등장시키지 않았고, 일에 미친 시장, 머리가 비상한 계획가, 권력을 가진 위정자들이 지금의 서울을 만들어냈다는 인상을 받은 것이다. 그 시대를 살아낸 사람이 적어낸 사실이겠으나, 나의 이 독후감 또한 내가 살아가는 시대의 시선일 것이다.
4.
업무차 CAD라는 프로그램을 다루면서, 남들은 도로와 교량, 건물을 기획하고 그려내는데 나는 그저 코끼리나 그리는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현실이 아쉬웠다. 그럼에도 도시계획에는 인문학이 담길 여지가 있었고, 그곳에 나의 어떤 역할을 투영해 볼 수 있어 보람을 간접경험할 수 있었다. 토목설계사의 관리직이라는 직무에서 어떤 특기를 만들려고 애쓰는데 도시계획은 어떤가, 분절된 사회간접시설을 종합해 사람사는 도시를 기획한다는 것이 어떤 일일까. 또, 그런 도시를 수출한다는 일은 어떤 일일까 끊임없이 상상할 수 있어 읽는 내내 기분이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