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년 전 이맘때의 일이다. 고3 수험생활의 돌파구라도 발견할까 싶어 찾아 들어간 책방에서 처음 '토지'를 만났다. 책방 주인아주머니는 좋은책 골랐다며 대여비를 깎아주었고, 교실 제일 뒷자리에서 1권을 펼쳐든 나는 그날 첫페이지를 넘기지 못하고 눈을 감았다. 눈에 들어오지 않는 활자와 어색한 말투, 또 그 16권에 이르는 많은 양에 압도되어 읽기를 포기한 것이다. 결국 다음날 반납하고 바쁜 고3 공부를 핑계처럼 되뇌며 돌아온 기억은, 어느 서점에서든 '토지'주변을 서성일 때마다 되살아났다. 언젠가는 읽고 말겠다는 다짐과 함께.
대학을 졸업했다. 굽이진 산길을 오르듯 사방팔방 새로운 것들에 눈을 빼앗긴채, 그러나 가파른 고개를 넘듯 보낸 20대를 돌아보니 모양이 군데군데 엉성한 허수아비 한 자루가 서 있을 뿐. 스물아홉이란 나이가 내게 인생을 물어왔다. 정신없이 걸어온 길에 나는 어디에 존재했냐고. '양쪽에서 팽팽하게 잡아당기고 있는듯 쨍하게 얼어붙은 겨울 밤 하늘', '빙벽에 메달린 자일처럼 휘청이던 그 달에서 쏟아지는 달빛은 안타까운 눈물을 머금고 있는 듯', 허수아비 앞으로 길게 늘어선 그림자는 나를 강하게 잡고 있었다.
결코 뿌리치지 못하리란 걸 알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타협하지 않기로 했다. 저자의 말처럼 '앞날이 지금보다 험난할 것을 예감하면서도 도전함으로써 비상을 꾀한 것'이다. 나는 '빈방에 나를 가두고' 수많은 활자로 채찍질하기 시작했다. 이정도면 지난 3개월동안 백수로 있었던 배경설명으로 충분할까. 하지만 나는 지금 행복하다고 단언한다. 그저 시간이 흘러가는만큼 살아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던 지난 시간보다, 더딘걸음이나마 앞으로 내딛고 있는 한 걸음 보폭이 나의 존재감으로 충만하기에.
저자는 '허구의 세계'라고 말하지만 우리 땅 '토지'에는 매순간 나와같은 고민을 하는 민중이 있었다. 을사조약 이듬해인 1897년 한가위에서 시작해 1945년 민족해방을 맞이하기까지, 처절한 역사의 장이었던 우리 땅을 '토지'에 옳겨 놓으며 저자는 25년 동안 앓았다. 그런 작가의 혼을 따라 생명을 얻고 잃었던 최치수, 김길상, 최서희, 김환, 몽치.., 그들의 삶을 조망한 것 뿐인데 지난 삼개월 간 매일밤 '토지'에 머리를 묻어야했던 나도 앓았다. 어떤 슬픔, 기쁨으로 형용할 수 없는 땅과 같고 하늘과 같았던 세상. 그 속엔 '개미 뫼 문지듯' 살고있는 민중의 삶이 살아 숨쉬고 있다.
지난 달 대학 축제 주점에서 한 교수님과 술잔을 기울이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중, 요즘 '토지'에 빠져 행복하다는 말을 꺼냈더니 갑자기 교수님의 얼굴이 반가운 듯 환해지시며 당신의 '토지'이야기를 해주셨다. 군복무시절 온통 카키색으로 황량했던 3년 남짓의 시간동안, 당신은 '토지'를 읽는 즐거움으로 버틸 수 있었다고. 시대를 넘어 서로의 지위를 넘어 소통할 수 있게 하는 문학작품의 힘을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었다.
언젠가 시간적 여유가 생기면 다시 한 번 읽어보고 싶다고 하신 교수님처럼, 나도 10년 후, 조금 더 인생을 경험했을 때 다시 한 번 '토지'의 세계를 방문하고 싶어졌다. 10년 전, 새로운 세계에 발을 담그기가 두려워 포기했던 그 때의 나와 지금의 내가 다른만큼, 10년 후의 나는 얼마나 다르게 변모해 있을 것인가. 개미 뫼 문지듯 끊임없이 노력하는 나날이 어떤 운명을 만들어 내는지, 나는 작가의 시선으로 내 인생을 관찰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