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헌혈 횟수가 쌓이면서 헌혈을 유지하기 위해 일상을 조율하게 된다. 두세 달에 한 번은 헌혈의 집에 들르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일 년에 몇 번 헌혈하는가를 그 해의 성취로 삼는다. 행여 해외 출장이라도 잡히면 출국하기 전에 빚을 갚는 마음으로 달력을 살펴 일정을 비운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남을 위한 봉사에서 나를 위해 헌혈하는 다회헌혈자가 되었다.
2.
몇 해 전부터 새로운 기념품이 생기고 기존 훈장들과 별개로 70회 헌혈에도 뭔가를 준다니 그게 또 목표가 된다. 헌혈 마케팅 문자를 기억해 두었다가 제때에 그곳에 찾아가는 속된 마음이 들킬까 봐 모르는 척하는 모습이 봉사자라기 보단 직업인에 가깝지만, 가끔 매혈을 한 것인지 착각할 정도로 두 손 가득히 받아올 땐 가족들 앞에서 어깨를 으쓱하게 된다.
3.
혈관 수축이 좋아서인지 유독 추운 날 헌혈해서인지 채혈에 시간이 오래 걸린다. 혈액주머니를 흔드는 기계가 알림음을 낼 때마다 주먹 운동도 하고 다리에 힘도 줘 가면서 정해진 양을 마치고 나면 앞으로 몇 번이나 더 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어진다. 70이란 숫자를 보기까지 20년이 넘게 걸렸는데, 앞으로 10년은 건강해야 100번을 채울 수 있을텐데.
4.
올해는 헌혈 아닌 다른 봉사활동을 해보고 싶어 수요처를 찾아봤지만 시도 한 번 못하고 3월이 지났다. 누군가를 돕고 싶은 마음은 들쭉날쭉인데 바쁘다는 핑계는 그대로다. 시간과 체력은 점점 줄어드는데 이러다 나만을 위해 살게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부채감으로 자리 잡는다. 도움이 필요한 남과 나를 위해 체력과 모든 시간을 저당 잡히지 않겠다 다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