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통행권을 말하기도 민망하다. 작은 차 한 대, 가끔 오토바이 몇 대가 지나가는 걸 갖고 트집 잡는다는 볼멘소리라도 한다면 미안하기까지 할 것이다. 그래 다 안다. 매일 소비되는 먹을 것들과 무거운 종이들을 이 길을 이용하면 양 옆으로 자리 잡은 매점까지 쉽게 배달할 수 있다는 것을. 그뿐이랴. 하루가 멀다고 주문하는 피자와 통닭도 이 길을 통하지 않고서는 따끈한 맛 그대로 전할 수 없다는 것을. 그러고 보니 모두 소비자인 학생을 위한 것이다. 그들은 그렇게 말할 거리가 있다.
하지만 이것이 정말 학생을 위한 것일까?
태초에 차 없는 거리가 있었다. 명동거리나 로데오거리가 아니고, 우리학교 송도 캠퍼스의 밑그림을 그린 설계도에 말이다. 처음엔 차들이 건물 사이사이를 누빌 수 있도록 설계한 것을 ‘학생들이 걸어 다닐 거리에 차가 다니는 게 말이 되냐’는 ‘말씀’이 있고 난 다음에 다시 그린, 통행권을 고려한 설계도다. 덕분에 아스팔트길이 캠퍼스를 울타리처럼 둘렀고, 넓은 지하주차장이 생긴 것 아닌가. (땅이 부족했다고 고백하기엔 우리의 처지가 안타깝다.) 하지만 송도생활 2년차에 접어든 지금, 차 없는 거리는 차 밀리지 않는 거리로써 더 의미 있다.
물론 그런 의미는 학생을 위한 것이 아니다. (소비자를 위한 것일 수는 있겠다.) 기숙사에 살던 통학을 하던 건물 사이를 이동하는 시간은 쉬는 시간 10분으로, 대부분의 이동시간은 정해진 시간에 집중되어있다. 그 길 위에서 차량을 만나면 외나무에서 적을 만난 것보다 더 난감하다. 학생이 무조건 피해야하기 때문이다. 캠퍼스 안에서 차량의 제한속도가 20km/h라지만, 귓등을 스치며 달리는 오토바이와 육중한 몸매로 맞은편에서 달려오는 차량을 맞이할라치면 속도와 무관한 생명의 위협을 느낀다. 두 눈 뜨고 다니는 한 안전하다고?
눈을 감고 다니기 때문에 사고가 난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원인은 같은 길을 사람과 차량이 동시에 이용한다는 점이다. 사람이 다니는 길과 차가 다니는 길은 분명히 구분돼야한다. 그리고 그 구분은 학생의 안전을 지켜야할 학교당국의 역할이다. 통행권은 단지 보행자의 불편을 줄여주기 위해 만든 권리가 아니다. 오히려 보행자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 차량운전자로 하여금 불편을 감수하게 한 일종의 의무다. 캠퍼스 안에서 종횡 무진하는 차량을 통제할 최소한의 규제는, 먼발치에 세워놓은 안내판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학생들의 이동시간을 고려해 차량 진입시간을 정하고 적극적으로 관리 감독해야한다. 당신은 운전자이면서 동시에 보행자다. 요즘은 광고에서도 이런 말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