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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영화 감상문

한국 현대사 산책 시리즈 완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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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강준만 씨는 멀게는 1945년 8.15해방에서 가깝게 1988년 서울 올림픽과 1989년의 시대상까지 한국현대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굵직한 역사적 사건은 물론 사회 전반에 걸친 시대상을 꼼꼼히 정리했다.

제목으로만 살펴보자면 1940년대 편에선 8.15해방에서 6.25전야까지, ‘50년대 편은 6.25전쟁에서 4.19전야까지, ’60년대 편은 4.19혁명에서 3선 개헌까지, ‘70년대 편은 평화시장에서 궁정동까지, 마지막으로 ’80년대 편은 광주학살과 서울 올림픽이라는 주제로 한국 현대사를 10년씩 나눠서 그 시대를 관통하는 중요하고 알아야할 역사적 사실은 물론 일반 대중들에게 잘못 알려지고 잘 알려지지 않은, 그래서 모두가 모르거나 잘못 알고 있는 역사를 정리했다.
총 15권에 이르는 분량이지만 저자는 학자들의 논문은 물론 일반 대중매체, 역사적 사료가 될 만한 갖가지 자료들을 무려 1만여 개의 테마별 파일에 정리하였고, 이 책을 완간하기 위해 10년 간 씨름했다하니, 나는 이 책을 선택하면서 저자의 사상에 어느 정도 노출되어 역사를 보는 눈에 색안경이 끼어지지 않을까도 걱정했지만 그의 성실함을 신뢰하면서 첫 페이지를 열었다. 
5000여 쪽에 이르는 분량의 책을 읽고 그 내용을 A4용지 2-3쪽 분량으로 요약한다는 것이 무리임은 물론, 그 시대를 살아오며 격어 온 사람들 앞에서 나의 편집술을 보여준다는 것이 무례하고 부담스러운 일이라는 것을 알지만 조심스럽게 기억을 정리해보고자 한다.

<8.15해방과 6.25전야의 모습>

우선 저자는 40년대 편에서 8.15해방과 6.25전야까지의 국 내.외적 상황을 여러 학자와 역사적 사료들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당시 상황에 대한 지식이 전무한 나로서는 그 역사위의 하루하루가 신기하고 얼을 쏙 빼어놓는, 재미있으나 웃지 못 할 사건들이었고, 가슴이 메이고 두 주먹이 불끈 쥐어지는 이야기였다.
1권에서는 도둑같이 찾아온 해방과 30분 만에 그어진 38선, 신탁통치에 대한 갈등과 투쟁을 보여주며, 그 이후 벌어진 좌.우파 갈등의 폭발의 배경과 상황을 보여준다. 2권을 통해서는 분열에서 분단으로 이어지는 내부다툼, 욕망과 폭력의 제도화라 일컬어지는 그 당시 국가라는 이름의 조직의 횡포들을 고발하는데, 이 때 알게 된 제주 4.3항쟁과 그 이후 보복적으로 실행된 제주에서의 ‘인간사냥’면을 보았을 때 동족이라는 단어에 대한 신뢰를 잃었으며, 마지막으로 반공이 종교화가 된 배경을 통해 알게 된 이승만의 우상화, 또 그 시대의 ‘사바사바 정치’, ‘요정 정치’라고 불리는 정부의 작태를 보고나서는, 밀려오는 약소국의 설움과 국가 고위직에 대한 미움 때문에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전과 다르게 약간 삐딱하게 되었다. 물론 그 이후의 역사를 보면서 더 심해지고, 골이 깊어졌으니 비단 40년대의 그 분들만을 향한 불만만은 아니다. 이렇게 40년대 편을 마무리 짓는 저자는 40년대를 ‘한恨과 욕망의 폭발’의 시대라고 표현하고, 그 결과로 ‘전투적 극단주의가 배양’되었다고 말하고 있다.

<이승만 前 대통령과 6.25전투상황>

‘6.25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주제로 이야기를 풀어가는 50년대 편은, 그동안 머릿속으로만 뭉게뭉게 떠올리며 상상하고, 그저 북과 중국은 나쁜 공산당이라고 저주하던 나에게 확실한 좌절과 실망, 안타까움과 슬픔을 안겨주었다.
1권에서는 골육상쟁의 비극을 ‘군사전쟁’과 ‘정치전쟁’으로 구분하여 그 당시의 전투상황을 보여주고, 2, 3권에서는 지금의 한국인의 특성에 영향을 주었던 50년대의 정치, 사회상을 보여준다. 특히 2권에서 말하는 ‘우상정치’와 ‘동원정치’의 한국은, 이승만을 예수나 석가와 같은 성자로 묘사한 그 당시 사회 중심의 인간의 사상을 보고 나를 구역질나게 만들었다. 50년대 편에서 가장 주목한 내용은 맺음말로 간단히 서술한 저자의 현 사회 분석 란이다. ‘소용돌이 문화’의 명암 이라는 소제목의 짧은 글은 나로 하여금 지금 사회의 모순을 조금 더 분석적으로 바라보게 도와주었다.

<4.19혁명과 월남파병>

내가 가장 흥미 있어 하는 시대인 60년대 편은 개인적으로 가장 부담스러운 부분기도 하였다. 책의 분량도 분량이지만 그 속에 담긴 내용이 만만치 않았고, 그 내용을 통해 드러내어지고 까발려지는 시대의 모순과, 당시 피해자였던 서민과 같은 계층의 사람으로서 느끼는 억울함으로 인해 내 생각이 변하고, 시대를 바라보는 작자의 시선에 파묻혀 주체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을 잃는 것은 아닌가하고 고민하면서 한 글자 한 글자 뜯어보았기 때문이다.
60년대를 통틀어 ‘기회주의 공화국’의 시대라 꼬집는 작자는, 4.19 혁명으로부터 병영국가의 건설, 한일협정과 월남파병까지 이르는, 현재까지도 사회적 이슈가 되고, 많은 사람들의 이목을 끌지만 그만큼 또 잘 알려지지 않은 내용들을 소개하고 있다.

<박정희 前 대통령과 김형욱 前 중앙정보부장>

한국 현대사 산책의 첫 출판은 70년대 편이다. 가장 먼저 나온 만큼 한 글귀 한 글귀마다 세심한 노력을 기울인 것이 보이고, 그 만큼 저자의 의견이 많이 들어있다. 흔히들 70년대 하면 박정희를 떠올리는 만큼, ‘평화시장에서 궁정동까지’라는 큰 틀로 70년대를 풀어가는 이 책은, 박정희의 1인 독제체제완성과 10월 유신, 수출전쟁과 안보전쟁, 그리고 박정희 시대의 종말에 까지, 우리가 모두 겪었지만 말 못하고, 잘못 이해하고, 그 배경과 정부의 의도를 파악할 수 없었던 수많은 이야기들을 폭로하다시피 외치고 있다. 저자의 말을 빌자면, 70년대를 겪은 사람들도 모두 자기 자신의 좁은 삶의 반경에 갇혀서 지냈기 때문에 그들의 70년대에 대한 이해와 평가는 오히려 그 시절을 겪지 않은 사람들의 그것보다 더 편협하거나 왜곡된 것일 수도 있다는 말이다.
나는 이 책 중에서 특히 ‘폭력과 고문이라는 이름으로’부분에서 말하는 그 당시 중앙정보부와 정부의 행위들을 보면서 적잖은 분노는 물론, 그 시절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외치던 고등학생, 대학생 또 일부 깨인 언론인등 사회 각부의 투사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이 들었다. 70년대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말하는 저자는 2000년대의 한국 사회를 움직이는 이른바 ‘주류정서’라고 하는 건 70년대에 대한 거의 맹목적인 긍정이라고 주장한다. 이런 긍정의 토대 위에서 2000년대의 현안을 논한다는 건 원초적으로 불공정한 게임이라고 주장하며, 이런 불공정 위에 이의를 제공하고 있다.

<5.18광주 민주화 항쟁와 88서울올림픽>

이 책의 마지막시대인 80년대 편(90년대 편도 나왔습니다.)은 그 분량에 비해 가장 소득이 적은 책이면서, 또 가장 궁금했던 광주학살 사태를 다룬 책이다. 또 개인적으로 내가 태어나도 살아왔지만 한 번도 의문을 품지 못했던 시기에 대한 역사를 말해줌으로써 글을 읽으면서 연실 ‘아 그래서 그랬구나’를 외치게 했다.
‘광주학살과 서울올림픽’이라는 큰 틀로부터 광주학살, 저항의 불꽃, 단압과 고문의 광기,6월 항쟁과 대통령 선거, 마지막으로 88년 서울올림픽의 빛과 그림자까지, 내가 분명 보았지만 알지 못했던 대한민국의 이야기를 속 시원하게 조명하고 있다. 다만 내가 그 분량에 비해 가장 소득이 적은 책이라고 한 것은, 그 시대 사회 전반에 대한 이야기, 예컨대 언론, 문화, 등 별로 관심이 없는 부분까지 세세하게 밝힘으로써 책을 읽으면서 자꾸 맥이 풀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지막에 다시 한 번 되짚어 보았을 때, 나는 이 책들이 각 시대의 모든 모습을 정치.군사.사회.문화.언론 등 제반 영역에 걸쳐 중요한 사건 중심으로 살펴보게 도와줌으로써 이 책들이 단지 에피소드를 모은 책이 아니라 중간에서 끊이지 않고 계속 이어지는 흐름을 갖고 있다는 걸 알았다.

처음 이 책을 소개 받은 것은 군대에 있을 때였다. 책을 읽어가면서 나는 군대에서 보고 익힌 사회를 바라보는, 또 사회를 살아나가는 방법에 대해 회의를 가졌다. 그 당시 옳지 못한 지도층을 보면 자신의 몸을 불사르면서까지 불의에 저항하고는 했던 그 시절의 젊은 사람들의 삶의 모습에 반한 것이다. 순종이 절대적 가치라고 생각하고 있던 내게, 역사는 그런 행동이 늘 필요한 절대적 가치는 아니며, 때로는 많은 사람들에게 큰 고통과 실망을 안겨 주리라는 것을 알려주었다. 역사적인 시각으로 약 50년이라는 짧은 시간동안 이 사회에는 왜 이리 많은 사람과 사건들이 자신의 욕망과 이득을 위해 수많은 사람들을 가난하게 하고, 핍박하고 고통스럽게 만들었는지, 또 한 사회를 이런 모양으로 만들었는지 생각해 보았다. 광기라는 단어로 그 시대 사람들의 행위를 축약한 저자의 표현은 정확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그럴 수밖에 없는 한국인이라는 회의적이고 염세적인 시선으로 뉴스와 사회를 바라보곤 한다. 긍정적이지 못한 내 시선에 스스로 부끄러워지기도 했지만, 지금까지 살아남은 사회의 주류와 분위기가 ‘그런’사람이 아니고서는 견딜 수 없었던 시기였다는 사실을 알고서는 눈앞에 굵고 짙은 잿빛의 색안경이 씌워졌다. 하지만 그런 서글픔은 비극과 드라마를 통해서도 충분하다. 긴 거리를 짧게 산책한 나는 무엇을 얻을 수 있었는가.

홍세화의 말을 옮겨보자. “역사를 모르는 민족에겐 미래가 없다. 역사란 ‘과거’가 아니라 ‘오늘’에 대한 물음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가까운 과거일수록 공부하지도 가르치지도 않았다. 이는 현대사를 기피한 보수 역사학계와 정통성 없는 수구세력의 입맛이 맞아 떨어진 결과이다.” 어려운 단어들일랑 집어치우고 나는 “부디 오늘의 젊은이들이 이 책을 통해 1970년대를 살았던 이들이 흘린 땀과 눈물과 피를 느끼길 당부한다. 그것은 선배들에 대한, 아니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이기 때문이다.”라는 글귀를 마음에 새겼다. ‘냉철한 머리와 따뜻한 마음’은 역사공부를 하는 사람에게 필요한 단어가 아닐까. 부디 마음으로 역사를 보고, 화해의 시대가 열리길 바랄 뿐이다. 물론 그간의 학살, 고문, 핍박이라는 단어로 점철된 현대사를 보면서 얼마간은 그런 마음이 들이 않겠지만 화해란 우리 혼자만 하는 것이 아니지 않은가.


이렇게 한 학기동안 지하철로 가는 길가에서, 지하철 안에서, 집을 오가는 기차 안에서, 또 집에서도 밤낮 붙잡고 지내던 한국 현대사라는 15권에 이르는, 길지만 짧은 산책을 마쳤다. 책을 잡고 있으면서 그저 보기만 하는 산책이라면 나는 그 길에서 아무 것도 얻지 못하고 그저 실려 오기만 한 것이리라. 나는 책을 통해 읽고, 느끼고 생각하고 비판하고 저주하고 눈물을 흘리고 싶었다. 어쩌면 지금 안일하게 살고 있는 대학생으로서 나에게 따끔한 질책을 주고 싶었던 것일지 모르고, 이 사회를 이렇게 만들어 놓은 기성세대에 대한 통렬한 비판의 내용을 갖추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시대와 사건에 대한 의문은 책을 읽으면서 그칠 사이가 없었다. 가끔 옳지 못한 일이었지만 그 사람의 행동이 이해가 가는 경우는 더러 있었으나, 그래도 역시 내겐 의문과 모순의 현대사였다. 시각을 넓히기로 한 나는 조금 건설적인 의문을 갖기로 했다. 과연 역사는 반복하는가, 아니면 발전하는가. 그 답을 아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답이 있을 수 없는 질문이라고 생각한다. 지금, 인류의 역사를 온전히 대변해주고 드러내 주는 것이라고는 오직 인간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암울하게도, 현 시대의 인간도 어쩔 수 없이 지금까지의 역사에 의해 영향을 받고 변화한 사람 아닌가. 가해자이면서 피해자인 사람에게서 어떤 올바른 해답을 얻을 수 있겠는가. 하지만 이런 모순된 상황에서도 사람은 신념을 가질 수는 있는 것이다. 어쩌면 억지 물음이라고도 할 수 있다. 반복하면서 발전한다고 한다면 내가 무어라하겠는가. 하지만 짧은 생애를 살아가는 사람에게 사회를 바라보는 시각은 대단히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들의 짧은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는가라는 문제의 해답과도 연관이 있는 물음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역사는 발전한다는 신념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10년 전 100년 전의 불법을 지금 당연한 권리로 받아들이고 행동하는 현시대 사회를 보면 쉽게 알 수 있지 않은가. 하지만 스스로 그 발전을 위해 움직이지 않는다면 사회에 대한 불만은 그대로일 것이다. 우리에게 불만을 주는 요인 덕으로 이득을 보는, 우리보다 높은 지위에 사는 사람이 분명히 있기 때문이다.

발전할 역사를 위해 시대를 바라보는 옳고 건강한 시각을 갖자. 건설적 의문을 갖고 움직이자. 이는 우리네 역사를 공부함으로써만이 가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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