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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영화 감상문

세계화의 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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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세계는 비극적인 순간들을 향해 맹목적으로 총진군하고 있다. 나중에 역사가들이 우리를 준엄하게 꾸짖을 것이다. 당시에 우리는 과연 무엇을 하고 있었더냐고, 또한 당시에 경제계나 정치계의 엘리트들은 경제의 세계화와 급속한 기술혁신이 가져 올 엄청난 폐해들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더냐고, 범지구적인 사회적 위기를 미리 막아내기 위해 도대체 우리들은 무엇을 했더냐고 말이다.” - 에탄 갭스타인 - 본문에서

80년대에 태어나 그 이전의 세계적 호황을 들을 수도, 또 한국인으로서 그 시대다운 민주주의를 경험할 수도 없던 내게 세계화는 시대의 사명으로 여겨졌다. 그 때문인지, 책이 나온 지 10년도 지나서야 처음 들어본 ‘세계화의 덫’은 그 책 제목을 이해하기는커녕 책에 담긴 여러 구체적인 묘사가 선뜻 다가오지 못했다. 내 지난 경험과 지식을 총동원하기 전에는.

저자가 세계화와 국제화의 차이를 내게 묻고 스스로 답해주기까지, 나는 그동안 내 습관적인 이해가 얼마나 초라한 것인지 깨닫고, 그 흔한 리카르도의 법칙의 전제를 묻고 답하는 동안 경제공부에 소홀했던 나 스스로를 질책했다. 저자가 말한 정답을 보자. 세계화라 하는 것이 바깥의 영향으로 안을 열어 줘야하는 뉘앙스라면 국제화는 자기 스스로를 바깥의 세상에 적응할 수 있게 모양새를 갖추는 뉘앙스다. 또한 경제를 공부한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들어봤을 리카르도의 법칙 혹은 그 모형은, 그 나라의 생산력, 자본, 설비 등이 자국 내에 계속 머물러 있을 경우라는 대전제를 놓고 추리한 가설이다. 책을 몇 장을 넘기지 않아서, 터무니없는 임금인하와 근로조건의 악화 때문에 파업을 하려는 노동조합에게 사용자가 ‘다른 나라로 공장을 옮겨버리겠다’는 으름장으로 간단히 제압한 상황만 봐도 그 법칙의 현실성은 없다고 증명한다.

우리나라에서는 몇 해 전 유행한 <20 대 80의 사회>의 모습을 시작으로, 마치 몇 장의 사진을 보여주듯 열거된 시장과 국가의 권력싸움, 노동자와 사용자간의 거의 일방적인 협상모습, 세계금융이라는 고삐 풀린 망아지가 헤집어 놓은 지구의 모습은 오늘날 세계화라는 환상의 본질을 찍어놓은 듯하다. 그 가운데 저자가 두어 번 언급한 ‘조금 특별한 활동’에 대한 내용은, 대안 경제를 공부하며 협동조합의 일원으로 일하는 나를 감흥 시키기에 충분했다. 요컨대 민주주의와 삶의 질에 대한 세계화라는 괴물의 공격에, 건강한 지구의 미래를 대비하고 아직 세상이 희망을 가질 수 있게 하는 활동이라는 것이다.

개발과 이윤의 논리가 지배하는 세계시장경제의 덫에서 지구와 인류가 맞이할 미래는 서두의 준엄한 경고처럼 환경과 사람이 감당할 수 없는 모습일 것이다. 또한 세계화라는 덫에 걸려든 수많은 자본가와 그들의 영향에서 벗어날 수 없는 국가들은, 한참을 움직인 후라야 비로소 자신을 둘러싼 거대하고도 파괴적인 덫을 깨닫고 자신의 무력함을 자책할 것이라는데, 저자는 이런 시대에 우리에게 두 가지 선택권이 남아있다면, 하나는 1789년 파리 시민혁명에 기원을 두고 있는 ‘민주주의’와, 또 하나는 1933년 베를린 나치히틀러의 ‘전체주의’를 위한 선택이라고 말한다.

두 선택의 기로에서 민주주의로의 길은 시작부터 험해 보인다. 최근 유행한 유명메이커의 광고카피처럼 “The winner takes it all”의 정신이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는 현실만 본다면 말이다. 저자가 솔직하게 말한 것처럼, 과연 일반 시민들이 자신보다 못사는 사람들과 환경을 위해 자신의 소비욕구를 자제할 수 있을까?

저자는 함께 사는 사회를 위한 경제적 민주주의로의 선택을 위해 제도의 정비와 국가의 시장개입이라는 케인즈 식의 대안을 내놓았다. 하지만 함께 산다는 것은, 서로를 이해한다는 전제를 두고 생각해볼 수 있는 모습이다. 과연 다음세대는 파리혁명에서의 교수대보다 더 좋은 방법을 찾아낼 수 있을까.

마지막으로 도대체 국가는 누구의 것이냐는 준엄한 물음으로 책장을 덮을 수 없게 한 ‘세계화의 덫’은 나의 10월의 책이다. 꼬박 보름동안 나를 잠들지 못하게 한 흡입력은 과연 “대통령에게 권하는 책 30선”에 꼽힐 만하다. 물론 이 책을 대통령이 읽는다고 해서 우리 시대의 숙제를 풀어내리라 생각하기는 어렵지만 말이다. 오히려 초등학교에 ‘경제와 사회’과목을 만들어 모든 시민이 함께 읽어본다면 어떨까. 그렇게 배운 세대는 이전 세대와는 다른 선택을 할 수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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