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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영화 감상문

사랑의 블랙홀과 니힐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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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만난 영화에서 또 다른 철학을 접하고 난 감동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몇 해 전 한 지상파 방송을 통해 본 이 영화의 재미있는 스토리를 기억하고 있을 뿐이었지만, 다시 접한 영화에서는 배우들의 한마디 대사와 작가의 의도가 내게 결코 웃으며 넘길 수 없는 의문과 의식을 심어주었다. 그 의문을 기회로 니체와 만나게 된 것은 내게 큰 행운이 아닐 수 없다. 매일 반복되는 하루를 나는 운명애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인가. 또 내가 어느 장소에 갇혀 매일이 똑같아서 내 행동이 아무런 소용이 없다면 나는 그 운명을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인가. 아마도 영화 속 필 코너스처럼 소극적 체념주의에 빠져 모든 쾌락에 빠져보기도 하고, 나의 삶을 거부하기도 하며 운명을 받아들일 채비를 갖추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을 받아들여 사랑하기까지는 분명 반복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희망이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닐까.

군 시절 매일 반복되는 생활과 환경에서 조금이라도 성숙하고 변화하고자 노력했던 기억이 있다. 정해진 시간과 일정동안 남들과 차이를 만들어 내기 위해 노력했던 기억은 분명, 군 전역이라는 목표가 있고 반복되는 생활의 끝이 보였기 때문이리라. 이제 이것이 니체의 영원회귀라는 이름으로 표현할 수 없는 윤회사상에 뿌리를 둔 생각과 행동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하나의 운동이라고 표현한 니힐리즘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그리고 니체를 읽기 시작했다.

영화를 보고 그 길에 달려간 도서관에서 <니체와 니힐리즘-M.하이테거 지음>을 집어 들어 그 밤에 니체와 마주하게 되었다. 영화 속에서 발견한 기쁨 못지않게 그의 생각을 체계적으로 보고 있다는 기쁨에 밤이 새는 줄도 모르고 읽어 내렸다. 하지만 영화에서는 없었던, 지금까지의 가치에서 벗어나라는 니체의 말들이 나를 두렵게 했다. 영화 속에선 영원히 반복되는 삶이 흥미롭기도 하고, 나라면 그 상황을 더 즐길 수 있을 것 같고, 또한 더 훌륭하게 변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그 근간의 사상을 보니 쉽게 내뱉을 말들이 아니었다.

그 몇 해 전 이 영화를 처음 접했을 때 내게 준 영향은 실로 큰 것이었다. 나는 그때부터 하루를 내 생애 마지막 날 인양 여기며 살았던 것이다. 오늘을 어떻게 사느냐가 내일을 받아들일지의 여부를 결정한다는 영화 속의 대사처럼. 새로이 배운 피아노와 드럼, 수영과 그림은 아직도 그때 그 수준이지만, 매일 만나는 사람에게 친절을 베풀고 따뜻하게 웃어주는 버릇은 지금의 나를 만들어준 고마운 선물이 아닐 수 없다.

사실 영화에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장면은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서 필 코너스가 늙은 홈리스를 대접하고 그의 죽음에 안타까워하던 모습니다. 처음 영화의 제목을 보고 떠오른 것이 눈물을 흘린 기억인 것은 그 시적 어린마음에 가장 와 닿은 그 장면이 감동으로 다가왔기 때문일 것이다.

만약 수업을 듣지 않고 이 영화에 대한 감상문을 적으라 했다면 운명을 받아들이고 세상을 구한 위대한 주인공을 찬양하는 글이 외었을 것이다. 만약 니체를 몰랐다면 주인공이 운명을 받아들인 것의 의미를 뭔가 선한 일을 행하는 것에서 찾았을 것이고, 다른 사람들을 그들의 생애 회고의 날로 만들어주는 것에 의미를 두었을 것이다.

이제 한 걸은 더 나아가 주인공이 어떻게 운명애를 가지고 자기를 긍정적으로 변화시키는지를 알게 되었을 때 그것이 존재론적으로 얼마나 큰 변화이고 마땅한 변화인지를 이해할 수 있었고, 나에게도 요구하게 되었다. 자신의 삶을 감당하면서 차이를 위해 무엇이든 노력하게 된 것은 이 영화가 내게 준 가르침이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변화라고 말하고 있다. 그것도 긍정적인 변화를 자신에게 스스로 끊임없이 요구하는 것이다. “니체의 니힐리즘을 사유한다는 것은 방관자로서 존재하면서 그것에 대해 단지 생각할 뿐이며 행위를 해야 함에도 겁을 먹고 현실에서 도피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오히려 이 시대의 모든 행위와 현실적인 모든 것들이 그것 안에 자신의 시간과 공간, 사진의 근거와 배우. 자신의 길과 목표, 자신의 질서와 자신의 확실성과 불확실 즉, 자신의 진리를 갖는 것이다.”

나는 기독교인으로서 선교사를 꿈꾸던 청년이었다. 삶의 목표는 흐릿해도 목적은 뚜렷했고, 모든 가치의 판단 기준은 텍스트 안에 명확하게 쓰여 있었기에 그것을 받아들이기만 한다면 죽음 이후에 보답이 찬란한 빛을 낼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매일 아침 성경을 읽으며 가르침을 받고, 그날을 향한 전능자의 계획함을 기대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가던 청년에게 니체는 해방을 외치며 서 있다. 그때까지 그 청년의 신은 아직 죽지 않았다. 그 청년에겐 초월적인 가치가 분명히 있어 보였고, 그는 그 해방구를 향해 자신을 죽이고 살고 있던 것이다. 하지만 그 가치를 사유하고 있지 않은 청년에게 니체는 가치전환을 통해 그 가치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 지속적으로 생성해가라고 요구하고 있다. 또한 자기 자신의 진리 안에 서라고 외치고 있다.

처음에는 쉽지 않았다. 삶의 방향과 방법을 알려주던 전능자의 말씀에 귀 기울여 그것을 따라가는 쉬운 길에서 벗어나, 이제 나 자신이 나아갈 방향과 가치를 스스로 끊임없이 찾아내고 발전하기 위해 노력해야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원회귀에 대한 깊은 사유를 통해 진정한 삶은 자세와 삶에 임하는 태도를 아는 것은 축복이다. 나를 죽이며 살아야 했던 이곳에서 내가 살 수 있는 희망을 발견하고 그 희망이 다른 곳에 있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고 변화를 만들어 내기 우해 노력하기로 작정한 오늘, 이곳이 이전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공간임을 알려준 니체와 필 코너스가 고맙다. 그리고 오늘 이곳이 고맙다.

review. 2007년 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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