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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영화 감상문

캐스트 어웨이를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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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남겨진 곳은 어디든 무인도다.
건너갈 수 없는 바닷물에 잠겨있든, 관계의 벽에 쌓여있든 넘을 수 없는 외로움에 혼자남은 사람은 누구나 무인도의 주인공이다. 혼자 점심밥을 먹으며 '이 쌀만 축내는 놈, 그 나이에 할 게 그거밖에 없냐'는 자괴감가득한 속삭임에도 억척스럽게 씹어 삼키며 되뇌이는 단어는 '희망'이다. 내 삶의 나무가 아직도 태양을 향하고 있고, 물을 삼키며 뿌리가 자라고 있다는 희망이다. 이런 태도를 가르쳐준 영화가 있다. 많은 매채에서 같은 철학을 외쳤지만 가장 극적으로 머리에 남아 필요할 때 써먹기 좋게 이미지화 시켜준 영화-캐스트 어웨이다.

     






주인공은 물류회사 직원이다. 그것도 시간은 신이라고 생각하며, 정시 배달을 위해 헌신하는 훌륭한 직원이다. 사랑과 가족에도 실패하지 않은 그는 말그대로 잘나가는 회사원이다. 우연히 만난 사고가 아니었더라면 분명 높은 자리까지 올라갔으리라. 영화의 절반까지 와서야 이 영화를 재난영화나 무인도에서의 생활을 보여주는 정도로 가볍게(?)생각한 게 잘못이라는 걸 알았다. 일분 일초를 아끼며 달린 주인공에게 4년 간의 고립이란 그저 홀로 견뎌야 하는 외로움의 의미를 넘어, 그 시간동안 해야할 일을 못한다는 상대적 자괴감을 견뎌야하는 어마어마한 시련이었을 게다.

마치 내가 집에서 견뎌내야하는, '뭐라도 해야만하는 시간'이라는 압박의 크기만큼. 기다림에 익숙하지 않은 시대에, 또 모든것이 능력과 비례한다는 믿음의 시대에 아무것도 하지 못함의 의미는 그저 '쉼' 이상의 고통으로 다가온다. 웃는 게 웃는 게 아닌, 쉬는 게 쉬는 게 아닌 정서적 자기공간 부재에 오히려 쉴 수 있는 곳은 무인도뿐.

시련이 지나고 사력을 다해 떠밀려 돌아온 현실세계에 또다시 자기가 있을 곳은 없다. 4년이란 시간 동안 현실세계에서 자신의 존재는 이미 지워져, 자기가 있던 곳엔 다른 주인공이 자리하고 있다. 내가 가야할 곳은 어디이고, 앞으로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아야하는가. 지금의 내가 나에게 묻는 물음을 주인공이 화면에서 보여준다. 있을 곳이 없다고 갈 곳마저 없다는 건 아니다. 그리고 갈 곳이 있다면 그곳은 내가 있을 곳이 되는 것.

"이제 뭘 해야 하는 지 알았어. 난 계속 숨을 쉬며 살아갈거야.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떠오르고,

 

밤새 파도에 또 무엇이 떠밀려 올 지 모르잖아.

난 계속 숨을 쉬며 살아갈거야"

이게 희망이다. 홀로 있다고 느껴지고 쓸모없다고 느껴져도 살아갈 수 있는 희망. 지금의 삶이 대단치 않다고 느껴지는 속삭임은 날이 밝아옴과 동시에 사라지는 밤안개일 뿐이다. 나는 점심밥을 먹으면서도 이런 생각을 하니 항상 소화가 안되는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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