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책 아래 2013년 8월 17일이라는 판매일이 도장 찍혀 있었다. 11년 전 오늘 어느 서점에서 산 책은 그동안 이사 가는 곳마다 함께하다 결국 오늘 독후감으로 남는다. 이 책은 과거 누군가 만들고 오랜 시간 많은 손을 거쳐 어떤 눈 밝은 사람에 의해 인정받은 작품을 소개한다. 찾는 이의 다정한 눈길이 닿아 빛을 내는 데 시간은 중요해 보이지 않았다.
2.
연초에 책장을 정리하다 발견해 퇴근 후 한 두 편씩 읽다 보니 금세 반년이 지났다. 낮은 안목이 부끄럽게 느껴지는 한편, 책의 말미에 가서는 나름의 감상법을 터득해 요모조모 뜯어보고 원근을 주며 살펴보는 모습이 우스웠다. 그럼에도 최순우 선생님의 감상과 함께 작품을 읽는 게 즐거워 어떤 날은 그분의 말투를 따라 하는 모습을 발견하곤 속으로 웃었다.
3.
정겨운 작품을 마주하면 그 자리에서 수백 년을 뒤로 감아 만든 이의 등뒤에 서서 작품의 탄생을 감상하는 상상을 한다. 혼신의 손짓으로, 혹은 어떤 치기로 만들어내는 창작의 순간이 지금의 나와 다를 게 없는 어떤 인생의 한 순간이라는 생각에 시공간을 초월한 만남을 경험하는 것이다. 그 둘이 대화하는 날까지 얼마 남지 않은 것 같다.
4.
예술이 사람에게 무엇을 하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알려진 작품은 유명하니 그런가 보다 하지만 작품이 나와 관계를 갖거나 영향을 주고받은 경험은 없다. 지난 반년 동안 다정한 작가와 함께 예술과 관계 맺는 방법을 배운 것 같다. 아직 어떤 작품도 이름으로 기억하지 못하지만, 창조의 순간을 상상하는 게 즐거운 나만의 감상법을 발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