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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이 봄이 진이

[아내의 출근] 10년을 기다린 첫출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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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내가 출근했다. 10년 만이다. 결혼하면서 퇴사한 이후 봄이를 낳고, 봄이 초등학교 3학년 새 학기가 시작하는 첫날 첫 출근길에 나섰다. 몇 주 전 대학 선배와 통화하고 사무실에서 만나고 왔는데 그게 면접이었다. 무슨 일을 할 것이고 근무 조건은 어떻다는 등의 자세한 이야기는 못 들었지만 10년이란 경력단절을 끊을 기회라고 생각한 나는 기대하는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2.

회사에 입고 다닐 단정한 옷과 가방을 준비하던 아내는 허리가 아프다고 했다. 근처 병원에서 주사치료를 받았지만 오히려 통증이 심해져 큰 병원에 갔더니 그날로 입원해 디스크 신경성형술이라는 시술을 받았다. 병원에서 아내는 내가 회사에 가지 말라는 말을 한 번도 안 했다는 사실을 말해 주었다.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응원도 만류도 제대로 말하지 못했던 것이다.

 

3.

서운한 게 아니라, 함께 고민할 내 편이 필요한 것이리라. 회사에 출근한다는 것이 오랜만이고, 해본 적 없는 일이고, 주변사람들의 시선이 부담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런 아내의 자존감을 지키면서 마음의 부담도 주지 않을 수 있는 수준의 대화를 경험해 본 적이 없는데, 무책임하지 않고 아내를 존중하면서 새로운 역할을 감당할 수 있도록 용기를 주는 남편이 될 수 있을까.

 

4.

그렇게 출근한 아내는 매일 힘들어했다. 과장으로 입사한 만큼의 업무량이 훈련되지 않은 어깨에 갑자기 내려앉은 것이다. 처음 접하는 분야에, 별로 원하지 않던 직무인 데다 좋은 사수를 찾지 못한 것 같았다. 출근 삼일째 되던 날 회사에 퇴사를 통보했지만 팀장면담 끝에 한 달은 다녀보기로 했다. 마음이 가벼워진 걸까, 출근하는 아내의 걸음이 전보다 조금 가벼워진 것 같다.

출근길을 매일 함께 걷는 건 참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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