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은 대선의 해였다. 우리나라는 물론 자본주의 패권국가 미국의 대선에 전 세계가 이목을 집중한 한 해였다. 미국에서는 부시가 계급격차를 확대하는 불합리한 경제체제에 대해 분노하며 표심을 모으고 있었고, 우리나라에서는 노무현 정권이 민주주의적 제도와 틀을 안착시키고, 그 속에서 사람들의 참여를 이끌어 내겠다는 국민 참여정부를 부르짖었다. 5년 후 결과는 그들의 말들과 달랐다. 사회의 계층 간 골은 더 깊어지고, 국민 참여정부는 권력청치의 구태를 벗어나지 못해 국민‘참어’정부에 가까운 형상이 되었다.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라는 뒤섞기 힘든 단어들을 적절히 담아내기가 쉽지 않지만, 지난 5년 간 미국의 대통령이 외친 자본주의와 한국의 대통령이 외친 민주주의가 각각 그 나라에서 어떤 양상을 보였는지를 뒤돌아보며 감상을 적고자한다.
사회적 약자의 절규는 들리지 않는다. 그들의 입은 보이지 않는다.
「존 큐」는 가장 감동적인 장면을 이용해 이 시대의 불편한 진실을 보여주었다. 자신의 심장을 아들에게 이식하려는 주인공의 부성애는 몇 번이고 나의 눈시울을 붉어지게 했고, 그런 사랑을 가진 사람들을 자본의 힘으로 억누르는 이 사회의 냉정함에 분노하게 했다. 모든 권위는 시민에게 있다는 정신을 기반으로 성립되는 민주주의 사회는 자본주의와 어색하게 만나 오히려 그 권위를 자본을 가진 누군가에게 몰아주고 있다. 영화 속에서 주인공 존 큐가 아들에게 ‘기회가 있으면 돈을 벌라’고 말하는 장면은 자신은 총으로밖에 얻을 수 없던 권위를 아들에게 돈으로 얻으라고 말한 것처럼 들렸다. 필시 민주주의의 권위는 시민에게 있는 것이 분명하지만 최소한 존 큐에게는 총 또는 돈으로밖에 얻을 수 없는 특권으로 여겨진 것이리라. 제대로 된 보험증을 가지고 있지 못하면 의료서비스의 ‘혜택’에서 배제되어야하는 미국의 현실은 비단 미국뿐만 아니라 미국과 FTA(자유무역협정)를 체결하는 한국에서도 피해갈 수 없는 현실일 것이다. 자본이 있으면 최첨단의 의료시설로 복지‘혜택’을 얻을 수 있다. 하지만 자본을 갖지 못한 계층에게는 자신들에게도 권위와 권리가 있다는 국가의 말에 자존감을 얻을 뿐 실질적 ‘권리’를 보장받지 못하는 것이다. 계층 간의 격차란 재산의 차이로 증명되고, 재산의 차이는 곧 평등하지 않은 사회를 반증한다. 명목상 그들의 권위는 평등하지만, 그들이 얻을 권리 또한 평등한 것일까.
미국에는 의료보험의 적용을 받지 못해 병원에서 쫓겨나는 시민이 4천만 명을 상회한다. 또한 미국식 경제발전을 주창하는 이들은 유럽식 복지국가가 경제성장에는 비효율적인 모델이라며 고도성장을 추구하고 있다. 자본주의에서 복지와 의료는 시장경제에 맡겨져 효율적으로 높은 이윤을 남겨야하는 하나의 시장이 되었다. 감독은 주인공 아들의 입원을 포기하게하려는 사무직원의 모습과 심장전문의의 1년 평균 수익을 언급하며 불편한 진실을 보여준다. 이 시대가 극복해야할 과제를 보여주고 있다. 총과 돈으로가 아니라 그들의 당연한 권위로, 받아 마땅한 권리를 이 사회와 국가가 찾아줘야 한다고 외치고 있다.
복지국가는 그 사회의 구성원이 약할 때 힘을 주는 국가라고 생각한다. 한 개인이 신체적․정신적으로 유약한 시기에 국가는 그들이 스스로의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해야한다. 태어났을 때와 노인이 되었을 때, 아플 때와 사회적 소외감으로 정신적 고통에 시달릴 때 이 사회는 그 개인의 삶을 지켜줘야 하는 것이다. 수많은 개인이 건강할 때 사회에 공헌하는 것의 반대급부로서 또, 시민의 권위로 세워진 민주국가라는 이름이 퇴색되지 않기 위함이다.
존 큐는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팔아 스스로의 문제를 해결해보려 했지만 실패하자 그가 할 수 있는 마지막 행동으로 무력을 행사한다. 사회적으로 소외된 계층으로서 총을 통해 권력을 얻고자한다. 그 권력으로 아들의 생명을 지키려고 한다. 왜 함께 살아가는 인간사회에서 인간의 생명을 지키는데 스스로의 권력이 이렇게 힘이 없는 것일까. 민주주의에서 모든 힘은 시민으로부터 나온다는데, 그들의 힘이 이 사회에서는 자신의 몸도 지킬 수 없을 정도로 약한 것인가. 사회는 개인에게 권위와 힘을 돌려주어야한다. 불편하지만 이 시대의 진실을 알려준 존 큐가 고맙다. Thank you John Q.
■참고문헌
박효종, ≪민주주의와 권위≫, 서울대학교 출판부, 2005년
권터 그라스 외, ≪세계화 이후의 민주주의≫, 평사리, 2005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