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의 기록 썸네일형 리스트형 한 걸음만 내딛으면 지적 허영이란 단어가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배우고 싶어서, 궁금해서 뒤적이던 책장이 무겁고 날카롭게 느껴졌다. 연휴 첫 날 찾아간 그 넓은 서점에서 책장을 뒤적이지 않은 곳이 없었다. 냉정하게 말하자면, 관심있는 분야가 없었던 것이다. 이제 외롭다던지 우울하다던지 따위의 말은 않겠다고 했다. 내 글에서도 그런 투의 문장은 지우려 한다. 습관처럼 적어온 글들이 내 생각과 행동을 위축시킨 것 같다. 매달리고 달려들어도 겨우 하나씩 풀릴까한 일들 앞에서, 이전의 물렁한 생각은 가당치 않다. 정보통신분야에서 한참동안 서성였다. 컴퓨터 언어가 궁금하고, 네트워크가 궁금하다. 엑셀 아웃룩같은 툴에서만 맴돌다가 괜히 큰 거 건드는 건 아닌가 싶지만, 어쩌면 내 가는 길에 좋은 영향을 줄 것만 같다. 그 외에 관심.. 더보기 하나도 우스꽝스럽지 않다 정기 검진을 받으며 보통의 키와 보통의 몸무게, 보통의 시력과 조금 낮은 혈압을 진단받고 특별한 일 없네하며 돌아섰다. 추가 진단은 얼마요 하는 여의사의 말도 그냥 그렇게 받아들고 장사 잘하네하며 돌아온 것 뿐이다. 별 문제야 있겠어, 특별한 일 없네 하며. 뭐 특별한 일 없을까 찾아보는 게 일종의 욕심이다. 새로운 것, 그동안 못해본 것, 내가 하면 잘 할거 같은 것, 눈에 띌 만한 것. 마치 그것까지 있어야 삶이 완성될 것처럼, 현실을 미완성, 특별하지 않은 것으로 여긴 것이다. 그러다 오늘이 왔다. 정확히는 사랑챔버와의 만남이 닥쳐왔다. 사랑챔버에서는 칠십여명의 장애인들이 모여 클래시컬 음악을 연주 한다. 발을 구르며 연주하고 눈을 감고 노래 한다. 자리를 못잡고 무대 밖으로 나오기도 하고, 객석을.. 더보기 나비 넥타이를 맨 버스기사 굳이 버스기사 아저씨라 할 것도 없이, 그도 나도 생활 전선에 있는 하나의 사회인이다. 하루 중 대부분 앉아 있는 장소가 다를 뿐, 서로 아저씨라 부를 바에는 차라리 호칭을 않는 것이 낫겠다. 하여간 며칠 전 마을버스에서 조금 다른 기사님을 만나고 오랜만에 웃었다. 사회생활 시작하고 참 오랜만이다. 집에서 회사까지 2킬로미터. 걸어서 25분 걸리는 지척에 살면서 버스를 탄다는 것이 자랑할 일은 아니지만, 퇴근길 몸이 천근만근처럼 느껴질 때 주로 서초18번 마을 버스를 타고 집에 간다. 버스도 누군가의 일터인지라, 늦은 시간 일꾼의 지친 손길에 휘청이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 여기며 흔들흔들 서있는다. 그날 버스에 오르며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기사님의 정갈한 머리 매무세와 나비 넥타이였다. 그가 미처 궁금.. 더보기 무슨 생각을 하며 살고 있는지.. 터닝, 밀링, 호닝, 브로칭, 이말을 안다면 공대거나 나처럼 기계 파는 사람일 것이다. 주물이란 이름의 소재들이 컨베이어 벨트를 지나갈 때, 온갖 날카롭고 거친 것들이 그 사이사이를 갈아서 깎아서 문질러서 하나의 부품으로 탈바꿈 시킨다. 가공하는 이유는 하나이다. 서로 맞닿는 부분에 문제가 생기지 않게 하는 것. 가능한 정밀하게 평평하게 상처 없게 만들어, 부드럽게 움직이게 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소음이 적어진다. 그걸 보고 성능이 좋다 한다. 더욱 첨단의 것이며, 비싸진다. 눈여겨 보지 않아 몰랐는데, 지갑의 귀퉁이가 다 닳았다. 수없이 쥐고 다닌 끝에 결국 한 끝이 터져 나왔다. 일부러 가공하지 않아도 쓰면 쓸수록 그 모진 곳은 마모되기 마련인가. 거기에 비해 내 마음 결은 아직 거칠다. 맞닿을 .. 더보기 서른 한 살의 시 며칠 동안 앓았다. 그 사이 장마가 지나가고, 열대야도 못느낄 만큼 고단한 밤이 계속되었다. 나는 꿈을 꾼 것도 같고, 눈을 뜬 것도 같았다. 설익은 눈을 감고, 어른의 눈을 뜨기 바라며 분주하게 뛰어다녔다. 웃어대었다. 외로워했다. 며칠 간은 울기도 하였다. 그 사이 누군가는 나를 더욱 신뢰하기 시작했고, 누군가는 내게서 더욱 멀어지기 시작했다. 잡으려 달려든 것들은 하나 둘 씩 손가락 사이로 빠져 나가고, 억지로 밀어내려던 것들 만이 그대로 나를 감싸안았다. 이제, 받아들이니 더이상 무겁지가 않다. 삶의 무게는 그렇게 중력없이 내 위에 올라선다. 처음으로 맞춤양복을 입었다. 생일이라며 사회생활 선배가 맞춰 준 선물이다. 내 멋에 입던 폭 좁은 바지를 벗고, 앞 주름이 잡힌 정장을 입는다. 맘에 들었는.. 더보기 이사했습니다 그날은 버스를 잘못탔다. 목적지와는 정반대 방향으로 나아갔지만 나는 벨을 누르지 않았다. 이상하게도 마음이 편안해졌고, 나는 가는대로 가보기로 했다. 어떤 마을로 이끌어 줄 지, 기대 되었다. 가로수는 가지를 늘어놓고 나를 반기는 듯, 막 피어난 봄꽃들은 눈을 빼꼼 내민듯 했다. 따뜻한 어느 곳에 내려 나는 다시 방향을 가늠한다. 돌아갈 길이 아니라 머물곳을 찾아 나선다. 이제 자립해 살아갈 수 있는 내 집을 찾아 이쯤이면 좋겠다고 멈춘 곳에 빈집이 있다. 반지하다. 하지만 외부적으로 어찌할 수 없는 포근함이 나를 감싼다. 내집이다. 업무 틈틈이 서류를 준비하고 주말에 짐을 옮겨 놓았다. 어머니는 고개도 들지 않고 방바닥을 닦으셨고, 나도 고개를 들지 못하고 머뭇거렸다. 정리가 끝나기 무섭게 두분은 갈길.. 더보기 의미있는 변화 나는 스스로 동기부여하는 사람이라고 믿고 산다. 하지만 스스로 동기부여 한다는 건 저절로 그것이 된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하기 싫으면 그만둬버리는 놈을 움직이기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래도 살아 남는다라는 표현은 조금 과격하다. 너의 친구가 누구냐라고 물었을 때 대답이 궁색했다. 페이스북에 천명 가까운 '친구' 명단을 읊을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우물쭈물 나는 다시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 놈이라는 걸 보여주고, 그러니 친구가 없다는 말이 돌아왔다. 우울한 상황이지만 그다지 심각하지 않다. 이제는 익숙해질만도 하다는 뜻이다. 접속하면 알 수 있기 때문에, 그 전에 미리 알 필요가 없다. 기성세대는 우리를 보고 '이제는 상사업계에서 영업할.. 더보기 빚진 사람 나는 아무것도 물려받은 게 없다고 말했다. 훗날 성공한다면 그를 자수성가라 말할 생각이었다. 장학금을 받았으니 학교는 내가 다녔소. 내가 선택한 길을 스스로 걷고 있으니 내 인생은 내 손으로 다 일구었소. 나머지는 당신이 당연히 내게 해줘야할 의무요, 나는 받을 권리가 있소. 나는 권리가 있소. 틀렸다. 모두 다 당신의 댓가없는 선물이다. 한 번 키워보라고 정성들여 심어준 씨앗이, 당신의 보이지 않는 한숨 한 모금과 눈물 한 방울, 변함없는 따뜻함으로 이만큼 자랐더라. 부족하다고 채워지지 않았다고 여긴 그 여백에, 흘림체로 가득 쓰여진 순백의 그 무엇이 나를 빈틈없이 채색하고 있더라. 많은 사람들을 만난다. 내게 호감을 보이기도 하고 신뢰를 보내기도 하는 사람들. 당연한 호의로 받아들였다. 하지만, 그들.. 더보기 이전 1 2 3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