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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은 버스를 잘못탔다. 목적지와는 정반대 방향으로 나아갔지만 나는 벨을 누르지 않았다. 이상하게도 마음이 편안해졌고, 나는 가는대로 가보기로 했다. 어떤 마을로 이끌어 줄 지, 기대 되었다. 가로수는 가지를 늘어놓고 나를 반기는 듯, 막 피어난 봄꽃들은 눈을 빼꼼 내민듯 했다.
따뜻한 어느 곳에 내려 나는 다시 방향을 가늠한다. 돌아갈 길이 아니라 머물곳을 찾아 나선다. 이제 자립해 살아갈 수 있는 내 집을 찾아 이쯤이면 좋겠다고 멈춘 곳에 빈집이 있다. 반지하다. 하지만 외부적으로 어찌할 수 없는 포근함이 나를 감싼다. 내집이다.
업무 틈틈이 서류를 준비하고 주말에 짐을 옮겨 놓았다. 어머니는 고개도 들지 않고 방바닥을 닦으셨고, 나도 고개를 들지 못하고 머뭇거렸다. 정리가 끝나기 무섭게 두분은 갈길을 재촉하셨고, 나는 익숙하지 않은 동네를 기웃거리다 밤늦게야 들어왔다. 그날은 잠이 잘 오지 않았다.
날은 어느새 햇살로 가득차고, 집에서 회사로 가는길은 신록이 가득하다. 양재천과 말죽거리를 걷다보면 기분좋은 많은 것들이 나를 가득 채운다. 회사일은 아직 감도 못잡았지만, 살아가는 건 이제 조금 알 것 같다. 터벅터벅 걸어갈 만한 곳에 살면서 하루를 가볍게 툴툴. 그래 그렇게.
조금만 걸어나가면 등산할 수 있어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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