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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공의 세월

백수의 기록.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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面墻


명심보감 근학편에는 배우는 자와 배우지 않는 자를 각각 벼와 잡초에 비유한 글이 나온다. 그 글의 마지막 문장은 他日面墻悔之已老. 다른 날 담장에 얼굴을 대한 것과 같을 적에 뉘우친들 이미 늦었노라. 글을 읽으면서 한순간 숨이 멎을 정도의 두려움을 느꼈다.


面墻(면장)이란, 얼굴을 담장에 댄것처럼 나아갈 수도 없고 앞을 볼 수도 없는 상태를 말한다. 아무일도 하지 못하는 상태에 비유한 것이다. 가위눌렸을 때처럼 눈은 뜰 수 있지만 사지가 마음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두려움을 기억하는 내게 생생한 고통으로 다가왔다.


아마 근 한 달 동안 잠들어 있던 것처럼 허무하게 보낸 시간 때문일 것이다. 많은 핑계를 대며 허투로 보낸 하루하루, 난 이미 삶이 답답한 면장을 느꼈을 지 모른다. 하지만 그것이 얼마나 무서운 일인지, 또 앞으로 얼마나 무서운 결과를 가져올 지는 미처 몰랐다.


마음에 엄중한 경구로 남을 단어를 배웠다. 눈앞에 담장을 두고 앞을 바라보는 것도 나아가는 것도 할 수 없이 내 삶의 행로가 꽉 막히고 나서야 후회하지 않도록, 나는 두고두고 이 단어를 꺼내봐야 할 것이다. 무엇을 이루는 건 둘째다. 삶과 배움에 성실한 자세를 잃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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