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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혈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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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몸에 바늘이 꽂히는 따끔한 느낌은 전혀 익숙해지지 않는다. 오히려 항상 그 자리라 내 팔이 걱정되기도 하는 헌혈. 오늘로 열두 번째다. 외국에서 한 것까지 더하면 열네 번.

의식적으로 헌혈을 하는 편이다. 목표는 그저 꾸준히 하는 것. 주변에 헌혈이 몸에 안 좋다는 사람부터 건강을 위해 꼭 해야 한다는 사람까지 그 이해가 다양한데, 경험을 통해 헌혈증의 도움을 직접 본 사람부터 일정 횟수를 하면 제공받는 사은품(30번하면 은장과 손목시계, 50번하면 금장과 또 손목시계를 준다.)을 기다리는 사람까지 그 목적도 여러 가지다. 나는 그 어디쯤 일까.

특별한 횟수에 목표를 세운 건 아는 형의 손목시계를 봤을 때였다. 내 눈에 명품보다 아름답게 보인 그 시계를 향해 한동안은 꽤 꾸준히 했던 기억이다. 다만 전혈헌혈만 하는 내겐 매번 두 달씩 기다려야했기에 목표까지는 멀고 길었는데, 얼마 전 방문한 적십자 혈액원 홈페이지에서 나의 첫 헌혈부터 어제한 헌혈까지의 모든 기록이 남이 있는 걸 보고 매순간 그곳에 깃든 특별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일본 유학중에도 두 번 헌혈했다. 일본도 피가 부족하다는 말에 한국과 전 세계는 상황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걸 알았는데, 헌혈을 하며 알게 된 한국과 일본의 다른 점 두 가지는 흥미로웠다.

첫째, 일본에서는 개인이 헌혈을 하면 헌혈증이 아닌 헌혈수첩을 줘 10번까지 한 장에 기록할 수 있게 한다. 헌혈 전에 헌혈수첩을 제시해야하는 것도 특징이다. 한국에서 매번 헌혈증과 다양한 사은품을 나눠주는 모습이 떠올랐는데, 헌혈할 때마다 좋은 일 했다는 자부심을 느끼게 해주고 필요에 따라 헌혈증을 쉽게 양도할 수 있는 등의 긍정적인 효과를 기대했다는 인상이었다면, 일본인들이 헌혈수첩을 가지고 있다가 직접 제시하는 모습은 헌혈자가 자신의 헌혈 기록과 사회기여의식을 직접 관리한다는 인상이었다.

두 번째, 일본에서는 성분헌혈과 전혈헌혈을 포함해 1년에 남성 1200ml, 여성 800ml까지 헌혈할 수 있다. 전혈은 1년 에 3회 이내, 전혈헌혈 후 12주 이내 헌혈 금지 등 한국의 그것(한국에서는 전혈은 1년에 5회까지 할 수 있다는 조건이 있을 뿐이다.)과는 달랐다. 사실 각 나라마다 국민의 건강상태 등에 따라 헌혈제한 기준을 다르게 두고 있다는 것도 처음 알았는데, 하필 우리보다 부자나라에서 헌혈은 더 적게 해야 한다는 게 은근한 열등의식을 일으켰다.(내겐 영화 챔피언의 감동이 큰 만큼 피와 가난에 대한 스키마가 아직 남아있다.)

한국도 인구가 늘어나면 헌혈가능횟수가 줄어들까. 한국인이 일본인보다 건강하다는 걸로 이해해달라는 간호사의 말이 아직 나를 설득할 뿐이다. 목표한 헌혈기념 시계획득까지 18번 남았다. 3,4년 후로구나. 역시 익숙해지지 않고 따끔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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