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사무실 정리를 하려고 열어본 옷장에서 오래된 기억이 한 타래 흘러나왔다. 원주중학교 1학년 1반 24번의 책장에 들어있던 단 한 권의 책 <회의의 방법> . 다른 건 몰라도 학급 회의만큼은 잘 해보고 싶었나 보다. 딱딱한 문장만 가득한 그 책에서 무엇을 배웠는지는 떠오르지 않는다.
어느덧 대학생의 모습으로 한 강연장에 서 있다. 며칠동안 밤잠을 줄여가며 준비한 최종발표다. 아이템은 기계설비, 무역은 설비무역이 최고라던 후배의 말에 따랐을 뿐이다. 사용하는 용어가 입이 붙지 않아 발표시간 내내 쪽대본을 훔쳐봐야했던 ‘문제의 성우’는 목소리 덕에 우수상을 받았다.
기계설비 에이전트의 역할은 다양하다. 기계를 알고 전 공정을 이해하며, 회의를 이끌고 사람의 마음을 움직여 결론을 내는 것, 그것이 나의 일이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일, 학창시절 일이 풀리지 않을때마다 손편지를 쓴 기억이 스쳐 지나간다. 내 일을 좋아하게 될 것만 같다.
쉼없이 앞으로 나아간다고 생각했는데, 뒤돌아보면 항상 같은 풍경이다. 마음에 드는 회전목마 위에 올라앉아 오르락내리락 빙글빙글, 살아온 시간이 정해준 삶의 궤적을 따라 돌고있다. 제 허리를 관통해 제 판에 내리 박힌 손잡이를 놓을 수가 없는 것이다. 아, 저기 저 노란 풍선. 참 멀리도 날아가네.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