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많이 변하길 바랐다. 그래서 입사하고 처음 맞는 추석에 11시간행 비행기에 올랐다. 타인들은 학창 시절 이미 배낭여행으로 떠나봄직한 유럽을 회사일로 처음 가려니 조금 억울한 생각도 들었다. 영어로 대화는 통하지만, 일상에서 마주하는 낯선 언어의 도시. 독일 하노버 공작기계 전시회 참관기다.
MESSE 에서는 큰 전시회가 연중 열린다. 큰 부스와 중앙공원, 그리고 소세지와 맥주도.
세계 최대의 기계 전시회다보니, 모든 부스를 돌아다니기에 일주일은 짧았다. 많은 기계를 보고, 많은 것을 배워오리라 다짐했지만, 그보다 전시회를 꽉채운 각 국 비지니스맨들의 진지한 모습이 가장 인상에 남아있다. 이 시장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나의 파트너이자 경쟁사들이 숨쉬는 공기가 부스를 뜨겁게 채우고 있었다.
전시회장 가는 길. 매일 아침 Park die Sinne로 난 길을 통했다.
그에 반해 유럽 날씨는 내게 그다지 따뜻하지 않았다. 독일에 있는 내내 흐렸는데, 하루 중 잠깐 파란 하늘을 보여주는 때를 찾아 사진에 담노라면, 화창한 우리나라 가을하늘이 떠오르며 참 박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정 때문인지, 매일 한국식 아침식사를 차려준 민박집 아주머니가 참 고맙다.
지나가는 독일인이 찍어준 하노버 시청과 나. 피사의 사탑같고, 표정이 어색하다.
전시회가 모두 끝나고 하노버 시내를 걸어다녀며 비로소 유럽에 있다고 실감했다. 오래된 건물, 검소한 차림의 사람, 주위 시선을 의식하지 않는 듯한 연인과 한적한 공원. 훌륭한 건축물 앞에서, 잘 정비된 도로와 행정앞에서 이런 축복을 얻기까지 많은 이곳 조상들의 피땀이 스며들어 있으리라.
무슨 상인지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공연장에서 들은 피아노 선율은 기억나는 듯 하다.
라인강을 바라보는 구 시가지의 목조 건물에는 아직도 사람들이 살고 있다. 반짝 뜬 햇살에 이불을 터는 한 동양인 부부의 모습과, 무료 피아노 공연장에서 만난 브라질 교환학생이 떠오르며 문득 그곳에서 살며 누리는 많은 것들이 부러워진다. 맥주집에서 만난 독일인 부부는 아직 한국인이 메뚜기를 먹는다고 생각할까.
프랑크프루트 중앙역은 공사중이다. 다음엔 또 어떤 기회로 찾을 지 기대된다.
돌아오며 무엇을 생각했는 지 기억나지 않는다. 큰 세상을 보았노라 우쭐한 기분이 들기도 하고, 어딜가나 비슷한 모양새의 건물에 금새 실증을 느끼기도 하지만, 다음엔 내 차례라는 밑도 끝도 없는 엔진을 하나 얻어온 것은 분명하다. 열심히 살다가, 이년 후 밀라노에서는 더 큰 엔진을 달아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