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타령으로 가득한 세상에 사는 우리에게, 현진건이 들려주는 숭고한 사랑이야기. 불국사에 그 유명한 석가탑과 다보답은 수려한 자태뿐만 아니라, 그 뒤에 전해져오는 슬픈 이야기 때문에 탑돌이 손님의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당나라 석공이 빚었다는 두 탑은 그 영험함을 위해 석공이 타국에서 온 누이동생조차 만나볼 수 없게 했는데, 멀리 연못에 그림자가 나타날 때까지 기다리라는 말에 그러노라고 기다리던 누이동생에게 끝내 그림자가 나타나지 않아 무영탑(無影塔)이라고도 불렸다.
1930년대 일제치하의 그림자뿐인 시대를 살아온 작가는 시대적 사명감에 붓끝을 적셔 이 짧은 애화를 남녀의 숭고한 사랑으로 승화시켰다. 당나라에서 온 석공을 부여에서 온 아사달로, 그를 뒤따라온 누이동생대신 아사달의 아내인 아사녀를 등장시켜 애간장 녹이는 사랑을 그려내고, 운명적으로 만난 아사달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치는 신라여인 주만과 이들 사이에서 오직 애욕과 허식으로 존재한 금지. 그밖에 그들을 흠모하고 수작 걸었던 많은 인물들의 모습을 보여주며 전혀 다른 이야기로 풀어냈다.
부여의 이름난 석공 아사달은 이웃나라 신라의 불국사에서 불탑을 짓는 대공를 맡아 꼬박 30개월 동안 탑을 짓는다. 그사이 그의 스승이자 장인인 부석은 부여에서 세상을 뜨고, 홀로 남은 아사녀는 승냥이떼 같은 다른 제자들의 온갖 수작을 피해 남편을 찾아 서라벌로 떠난다. 한편 불국사에서는 아사달을 흠모하는 주만이 그와 함께 도망가기로 작정하고 대공이 끝나기만을 기다리는데, 탑짓기를 마친 바로 그날 아사녀는 자기 눈에도 훌륭한 주만을 마주치고 돌아오는 길에 ‘그림자 못’에 몸을 던진다. 이미 다른 집안과 정혼을 한 주만 역시 아사달과 도망하려던 것이 들통나 아버지로 인해 불길 속으로 던져지고, 대공을 마친 아사달은 ‘그림자 못’앞에 나타난 아사녀와 주만의 환영을 돌 위에 새겨 넣고 그 역시 못에 몸을 던진다.
‘그 지긋지긋한 사랑에 진저리를 치면서도 새삼스럽게 고개가 숙여’지는 사랑이야기는 여기서 끝이 난다. 아사달과 아사녀, 주만의 사랑이 그들의 모든 것을 버림으로써 완성됐다면,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아무것도 버리지 못하는 우리네 사랑은 얼마나 편리한 미완성품인가. 말랑한 사랑이야기에 익숙해진 내 귀에, 사랑하는 이의 모습을 돌에 새겨 넣는 아사달의 정소리가 쉼 없이 내리친다.
책 영화 감상문
무영탑 그 안에 담긴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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