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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영화 감상문

역사는 인간 노력의 결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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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0여년의 긴 역사. 찬란하다고 밖에 할 수 없는 세계의 수도 로마. 역시 감탄을 감출 수 없는 명장들의 통솔력과 그들을 화려하게 채색하는 전쟁과 생활을 묘사한 장면들. 헌책방에서 처음 만난 얼룩진 1권을 시작으로 인터넷으로 예약 구입한 15권에 이르기까지, 방대한 역사를 다룬 대서사시인 만큼 열다섯 권의 책을 한 권 한 권 포개 놓고 보니 벌써 책장 한 칸을 다 채웠다.

 작가 시오노나나미의 16년간의 집념과 노력의 산물을 한 학기 동안 빨아들이다시피 흡수한 독후감은 감개무량하기까지 하다. 책장을 넘기며 기숙사에서 대학의 본관까지 걸어가면서, 나는 로마의 창시자 로물루스가 되어 팔렌티노 언덕을 넘었고 로마를 제국으로 만든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되어 포강을 건넜으며 융성한 로마제국의 철인황제 마르쿠스아우렐리아누스가 되어 알프스 일대를 뛰어다녔다. 어쩌다 로마군 명장의 멋진 대사가 나오기라도 하면 며칠을 머릿속으로 되뇌이다가 흉내내어보곤 하면서….

지중해를 중심으로 로마제국이라면 어디에서건 맹위를 떨친 로마병사들과 함께 로마제국을 종횡무진하면서 지도를 떠올려보고 지금의 유럽 각 국을 돌아다니고 있다고 상상해보는 것도 심심한 재미가 있었다.

시오노나나미가 말하는 역사란 인간 노력의 결집이다. 그런 만큼 그녀는 인간성에 대한 이해를 중요시하면서 딱딱한 사건중심의 역사이야기가 아닌 살아있는 사람들의 살아가는 이야기를 적어내었다. ‘인간성의 정의’를 너무 현실적으로 내리고 있지만, 나와 같은 한 사람의 이야기이기에 길을 걸으며 2000년 전 사람들과 대화를 하면서 그들의 생각을 이해하고 그들의 연설에 감동을 받을 수 있었고 때론 질책하고 비판하면서 반면교사로 삼을 수 있었다.

로마가 낳은 유일한 창조자라는 칭송을 받고 원수정 로마를 황제가 통치하는 제국으로 탈바꿈시킨 율리우스카이사르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보며 안타까워했고 자신의 삶을 제국의 안위를 위해 기꺼이 바치며 집무기간 동안 끊임없는 격무에 시달리다 생을 마감한 오현제의 삶을 보며 생명의 유한성을 느꼈다. 또한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말과 함께 세계의 중심에서 찬란한 영화를 상징하며 영원히 존속할 것처럼 보였던 로마제국의 말없이 스러져간  쇠망사를 읽으면서 영원할 수 없는 인간세상의 유한성을 보았다.

15권 말미에 역자는 우리나라에서 로마인이야기가 한국의 많은 사람들에게 인기를 얻고 글을 쓰게 만드는 것에 대해 한 가지 이유를 들고 있다. 그도 친구를 통해 들었다는 얘기인즉슨, 대다수의 한국인들이 ‘카이사르 같은 지도자’를 한 번 가져보고 싶다는 열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나도 한 번은 친구들에게 이 책은 1200년을 이끌어온 리더들의 리더십 모음집이라고 소개한 적이 있다. 리더가 되어 사람들 앞에 서보니 책의 한구절한구절이 절절하게 다가왔다. 인간성 즉, 사람들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한 지도자가 가지는 한계를 보고 느끼며 또, 그런 한 명의 지도자로 인해 한 공동체가 어떻게 운명을 달리하는지를 보며, 더욱 옷깃을 여미고 긴장하며 책임감을 되씹어보게 되었다.

굳이 호메로스의 서사시에서 트로이군 총사령관 헥토르의 말을 빌릴 필요도 없이 인간도 국가도 언젠가는 없어진다. 하지만 역사는 인간의 노력의 결집이라는 말에 깊이 동감하며 인간이 함께 살아나가는 역사는 한 번 만들어볼만하다는 자신감을 갖게 되었다. 몇 달 동안 4000페이지가 넘는 글을 읽어내며 얻어낸 자신감인 만큼, 저 멀리 지중해를 넘나들며 넓혀놓은 세계관인 만큼, 언젠가는 팍스 코리아나(한국에 의한 평화)가 이루어지리라는 꿈을 품게 해준 책인 만큼 내 일생동안 함께하는 친구가 되길 바란다.

얼마 전 유럽문화 전공 교수님에게 유럽의 문화와 예술이라는 특강을 들은 적이 있다. 긴 내용의 요점을 말하자면 현재 유럽문화의 근간은 기독교이며 기독교가 찬란한 유럽문화를 꽃피웠다는 것이다.

이제 막 로마의 찬란한 역사를 맛보았을 뿐 중세 이후의 유럽을 읽지 못한 나는, 그 교수님께 한 가지, 또 로마인이야기의 저자에게 한 가지 의문이 생겼다. 다신교사상인 로마인들은 신은 인간을 돕는 존재일 뿐이고, 여러 신을 모시는 민족답게 다른 민족과 다른 문화는 물론 다른 신들까지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그로인해 1200여년에 이르는 영화를 누릴 수 있었다고 한다. 물론 다신교도인 만큼 왕년의 그들은 기독교도들이 아니었다. 그런데 과연 “천년이상 찬란한 역사를 이룩한 로마제국을 놔두고 그 이후의 유럽 문화가 찬란한 꽃을 피웠다고 말할 수 있는가.” 라는 질문이다.

개방과 받아들임, 뒤섞임과 동화로 세계에서 유래 없는 평화를 이룩했던 로마제국을 나는 주목해본다. 기독교를 위시한 일신교에서는 세상엔 오직 하나의 신 밖에 없다. 또 그 신은 인간에게 삶의 방향을 제시해주고 지침을 내려준다. 하지만 시오노나나미가 말하는 다신교제국에서 신의 역할과 지위는 일신교의 그것과 다르다. 역사란 인간의 노력의 결집이라고 할 만큼 역사의 주인공자리에 인간의 능력과 의지를 앉혀놓고 있다. 기독교가 유럽문화의 씨가 되어 꽃을 피웠다고는 말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한 작가의 책에 6개월 이상 몰입해 있다 보니 그 작가의 사상에까지 물들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위에 한 교수님께 드렸던 질문과 같은 선상에서 작가에게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과연 “기독교가 로마를 멸망하게 한 장본인인가.” 책을 읽다보면 다신교인 로마인의 사고방식과 여타 기독교도들의 사고방식에 큰 차이가 있다는 느낌이 든다.

첫째 신앙에 대한 접근방식의 차이다. 아직 기독교가 보급되지 않았던 로마시대의 신전을 바라보며 그들의 신앙관을 살펴보면, 그 시대 로마인들에게 신앙이란 인간의 편의를 위해 만든 소박한 믿음정도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신 중심의 생활이 아닌 인간중심의 삶을 영위하기 위한 하나의 도구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하지만 기독교시대의 로마에선 정반대의 상황이 연출된다. 신의 계시를 받고 신의 뜻에 맞추며 살아가는 믿음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재미있게도 로마쇠망의 이유는 로마인다운 로마인이 없어졌기 때문이라는 작가의 주장 근저엔 기독교에 대한 불만이 숨어있는 것 같다. 수많은 신을 가진 일본인으로서 같은 다신교제국이었던 로마를 써내려가며 동질감을 느껴서인지는 알 수 없지만, 또 그의 주장이 일리가 없는 것도 아니지만 옳고 그름을 떠나서 마음속에 의문이 들었다. “일신교인 종교가 인간 세상에는 어울리지 않는 것인가. 과연 인간답게 살 수 없게 하는 장본인인가” 라는 의문이었다.

자신의 생각과 다른 남들의 생각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며 팍스로마나(로마에 의한 평화)를 이룩한 로마의 역사를 읽으며 평화에 대한 염원을 키웠다. 나 또한 그리스도의 말씀을 생명의 말씀으로 받아들인 사람의 하나로서 신앙관에 영향을 받은 것도 사실이다. 일생을 함께할 친구를 얻었지만 그 친구에게 평생 동안 품어야할 의문을 선물로 받다니 역시 세상에는 공짜란 없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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