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내가 쓴 기사들

도시락 들고 10년 만에 다시 찾은 고향

728x90

도시락 들고 10년 만에 다시 찾은 고향
‘행복한 달팽이’의 희망 행진


10년 만이었어요. 지금처럼 비가 많이 오면 제방 끝까지 강물이 차오르던 그 곳. 동네 형 동생들과 고기 잡고 헤엄치던 고향을 다시 찾았습니다. 시에서도 가장 외곽이어서인지, 아이들은 티없이 순박했지만, 식사를 거를 때가 많아 배고픈 친구들이 유독 많았던 우리 동네. 경제라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부터는 저도 ‘생활보호대상자’라는 명찰을 달게 되었죠. 학기 중엔 그래도 무료 급식 지원으로 배고프지 않았는데, 유독 긴 방학은 항상 일가친척의 집에서 머물던 기억입니다.

10년 만입니다. 유난히도 따뜻했던 그 겨울 어느 날, 단 둘이 함께 살던 할머니를 저 멀리 샛별마을로 떠나보낸 날, 저도 그 동네를 떠났습니다. 그동안 힘겨운 고3수험생활을 보내고 대학생이 돼 군대와 유학, 학생회까지 마치고 나니 어느덧 훌쩍 큰 청년이 되어 돌아왔어요. 10년 전과는 다른 세상이 되어있길 바라는 마음을 품고요. 취직도 했습니다.

원주생협의 ‘친환경급식지원센터’에 발을 디딘지 한 달이 다 되었네요. 맡겨진 업무 중에 매주 금요일 지역 결식아동에게 도시락을 전해주는 일은 제가 가장 좋아하는 일입니다. 밑반찬이 담겨진 봉지를 사이에 두고 아이들과 마주할 때 한편으론 그동안 세상에 진 고마운 빚을 갚아가고 있다는 깊은 뿌듯함이 번져오고, 또 한편으론 이 아이가 자랐을 땐 나 같은 일을 하는 사람이 없어도 되는 그런 사회가 되길 바라는 마음이 커집니다.

한 차 가득 도시락을 쌓아 제가 살던 옛 동네를 찾았습니다.
10년이 지나도 시골을 변하지 않나 봅니다. 강물이 눈에 띄게 얕아지고 못 보던 건물이 한두 개 세워진 것 빼곤, 어린 추억이 담긴 바로 그 동네였어요. 동네가 작아진 것처럼 보이는 건 이제껏 발길 한 번 안 돌린 제 게으름 탓이겠죠. 한 집 두 집 찾아가다보니 어린 시절 함께 뛰놀던 누나의 집에도, 매일 저녁 산책하던 윗동네도 들렀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곳에선 뿌듯함보단 말 못할 비애감에 젖었습니다.

‘아직 아무것도 변한 게 없구나…….’

2009년 7월 현재 원주시에는 약 2천여 명의 결식아동들이 지원을 받고 있습니다. 학교에서 조사해 상부기관에 알려준 숫자지요. 실재로는 이보다 많은 아이들이 굶고 있고, 점점 더 빠른 속도로 많은 아이들이 건강하게 자랄 권리를 잃어가고 있습니다. 정부에선 이런 아이들을 위해 방학 중 식권을 나눠줘 사전에 협약한 식당에서 밥을 먹게 하고자 ‘새올행정시스템’을 구축했는데요. 실상을 본 많은 학부모들은 분노를 감추지 못했어요. 한 명 당 3천원으로 식당에서 받을 수 있는 대접은 찬밥과 남들이 먹다 남긴 반찬, 못미더운 시선과 상대적 박탈감이었습니다.이제 지역사회가 스스로 대안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시로부터 학생 한 명 당 3천원의 지원비를 받아 ‘청소년육성회’, ‘교회’ 등 원주지역 11개 시민, 사회단체들은 도시락 나눔 자원봉사를 하고 있어요.

제가 속한 ‘친환경급식지원센터’의 조리 사업팀 ‘행복한 달팽이’는 올해 1월부터 아동급식지원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사업초기에 60여명이었던 것이 여름방학을 맞아 250여명으로 늘어 원주시 전체 결식아동수의 10분에 1이 넘는 아이들에게 밑반찬을 전해주고 있어요.

지난 달 SK행복나눔재단 후원의 행복나눔도시락 사업단에 선정돼 지원을 받게 되었어요. 약2억 원의 지원금으로 HACCP급의 설비를 구축하고 많은 사람을 채용할 수 있게 된 거죠. 무더운 날씨에 뜨거운 공기를 훅훅 내뿜는 조리기구로 가득한데, 공간도 협소해 서로 무릎을 맞대고 식사를 해결하던 조리실에서 벗어나 새로운 공간으로 이사할 생각을 하니 이제 세상이 변하려나 싶습니다. 결식아동을 위한 급식지원만큼은 이윤을 남기는 사업이 아니라고 강조하던 ‘행복한 달팽이’가족들의 신념이 결실을 맺은 걸까요.

비좁은 행복한달팽이 조리실 내부

행복도시락 원주지점으로 거듭나 “결식아동에게 양질의 급식을 책임지고 지원하겠다.”는 포부처럼, 손끝으로 따뜻한 희망을 전하는 ‘행복한 달팽이’의 걸음은 말 그대로 느리지만 행복한 ‘희망의 행진’입니다.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