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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대학생활#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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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아통상학부와의 만남

  우연치곤 괜찮은 만남이었다. 대학 진학을 위해 인터넷으로 검색한 단 네 개의 키워드는 ‘수도권, 유학, 장학금, 기숙사’였으니까. 당시 별다른 기능도 없던 CONAS(College Of Northeast Asia Studies)의 홈페이지에서 간단한 설명을 듣곤 다음날 원서를 샀다. 지금이야 PC로 인터넷을 통해 지원하면 됐지만, 그땐 몇몇 서점에서나 파는 입학원서를 사서, 그걸 담임선생님한테 보여줘 도장을 받고, 접수하는 동네(강릉이었지 아마….)까지 가서 내고 오는 방식. 원서를 살 때부터 낼 때까지 누군가에게 보인다는 인식에, 못가도 서울대 원서 한 장 사오는 사람 꼭 있었다. 하긴 그땐 우리나라에 대학이 몇 갠지도 몰랐지만, 인천대학교는 처음 들어봤다. 그래도 꽤 순진했다. 서울에 서울대학교가 있다면 인천에 인천대학교가 있는 건 당연하지. 정도로 내 고민은 끝났으니까. 부모님과 담임은 내가 흔한 대학에 가길 원했지만, 4년 간 학비 안 든다는 설득은 만사형통이었다.


 
고교3년 간 나는 성적으로나 성격으로나 눈에 띄는 학생이 아니었다. 모두 똑같은 짧은 머리에 한국적인 체형과 얼굴은, 한 학교에 닮은꼴 오형제정도는 기본으로 확보할 수 있었지. 다만 매년 몇 반 반장에 이름을 걸어 놓았던 게 특징이라면 특징일까. 꼭 가고 싶던 곳은 경찰대였던 기억이다. 사관학교와는 다른 느낌 자체가 좋았던 것 같다. 1학년 때부터 책상머리엔 경찰대 로고를 붙여놓고 지냈으니…. 대학 진학 후 첫 번째 시위에서 경찰들을 마주친 뒤 경찰대 안가길 잘했다는 생각을 했을 정도니 얼마나 순박한 꿈이었나. 하지만 꿈 자체가 주는 압박에 고3생활 내내 열심을 냈다. 새벽 4시 기상-공부-밤 12시 취침이란 시간표는 괜한 욕심에 나와 가족을 피곤하게 했다고 생각할 정도다. 학원 안 다녔으니 그래도 다행이지만 전체 1등급으로 수능까지 마무리할 수 있었다.
 

  나는 대학에 왜 가는 건 지 몰랐다. 중고등학교 6년 간 학창생활을 했다면 공감하겠지만, 나를 찾을 수 있는 시간이 없었는데, 내가 가야할 길(진로)을 찾기란 여간 힘든 일이었겠나. 가장 몸에 맞고 많이 봤던 군인, 경찰로 자연스럽게 커갈 뻔 했던 나를 사고 치게 한 건, 현실을 벗어나고픈 욕심이었다. 직업으로 날 표현하는 게 아닌, 내 삶으로 나를 표현할 수 있게 대학생활을 경험해보자. 는 마음으로 진학했다. 사실 고교시절 한 번의 입학요청을 받았다. 지역에 있는 대학에 지역출신 인재를 키우겠다는 공문이 각 고등학교로 전달되었던 모양인데, 원주고등학교에선 내가 원서를 넣었다. 그래서 대입3번의 기회 중 하나는 CONAS에, 또 하나는 그곳에 원서를 넣고 한 번의 기회는 버렸다. 등록금 1년에 몇 백. 어차피 붙어도 갈 수 없는 것이 대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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