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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대학생활#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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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답노트

  누가 인생엔 정답이 없다고만 했는가. 조금 더 친절하게 오답은 있을 수 있다고 얘기해주었다면 좋았을 것을. 임기를 마치고 무작정 할 일을 찾던 5개월이었다. 돌이켜보면 대학생활 중 그만큼이나 하릴없이 시간을 보낸 적이 없다고 회상할 만큼, 어둡고 긴 터널이었다. 많은 사람을 만나고 내 꿈을 저울질하며 보낸 시간동안, 이렇다 할 정답을 찾진 못했지만 이건 아니다 라는 오답노트는 만들 수 있었다. 그때 얼마나 많은 꿈들을 좇아 나를 비웠는지, 텅 빈 가슴 덕에 한 달 여 요양해야할 지경이었다. 도전하는 만큼 강해진다는 말은 내게 적용되지 않는가보다. 오히려 도전하는 만큼 분명해진다는 말이 어울렸다. 모 선배에게 배웠던 이벤트 진행, 만나는 사람마다 뜨악하게 할 아이들과 함께했던 영어교사, 면접을 앞두고 되돌아왔던 아나운서. 그리고 약속되었던 기자 일까지…. 항상 끝이 안 좋았던 기억이다. 뒤도 안보고 도망친 터널 속이었다.


 
그날이었다. 내 처지를 확신하게 된 것은. 아버지가 살던 자취집에서 지샌 하룻밤 동안이었을 게다. 환갑이신 아버지와 보낸 첫날밤이 내겐 천일과도 같았다. 잠을 잘 수 없었다. 어버이날을 일삼아 들렀던 서울이었다. 당신 스스로 실패한 지난날이라며 바닥을 기던 바퀴벌레를 누르는 아버지의 표정엔, 나에 대한 기대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주마등처럼 고향에 계신 어머니의 김밥을 마는 손이 스쳐갔고, 막일을 하기위해 타향 공사판으로 출장 간 아저씨의 억센 턱 선이 굵은 땀방울로 흐릿해졌다. …. 순간 스쳐간 생각이 나를 놓아주지 않았고, 손에 쥐고 있던 모든 것을 놓칠 수밖에 없었다.


 
난 한 번도 내 상황을 직시해 본 적이 없다. 머릿속에선 이념과 이상으로 나를 붕붕 뜨게 했고, 현실에선 눈을 낮춘다는 핑계로 쉬운 길만 찾으려 하지 않았나. 내 어제와 오늘을 위로하기 위한 가장 적극적인 방법은 최선을 다해 노력하는 것뿐이라는 걸 알기까지, 대학생활 끝자락까지 와야 했다. 의지할 것은 내 두 다리뿐이라는 것이 분명해졌다. 노력 없이 댓가를 바라던 생활을 접고 어머니 계신 고향 길로 향했다. 날씨가 더워지려는 지 밤 새 봄비가 내린 날. 무거운 어깨로 새우잠을 청했던, 기숙사에서의 마지막 5월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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