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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 순장 된 날. 내 기억으로 세 번째다. 대학생활을 시작한 첫 해, 매주 고향가는 기찻길에 올라 그 주의 성가곡을 고르던 모습, 나의 성에 이기지 못해 그만 독창을 해버린 그날을 떠올리면 눈을 뜰 수 없는 처음 기억. 유학생활 도중 새벽기도회를 떠맡아 몇 번 씩이나 아침에 일어나지 못해 도망가고 싶던 두 번째 기억. 그렇게 내겐 자격이 없다하여 멀찌기 떠나 있었는데, 그 곳에서 세 번 째 부름이다. 햇수로 12년이 지났는데 변한 것은 없고 미안함은 쌓여오다 결국은 YES 였다. 교회에서 11명이 되는 누나 형 동생들을 위하는 순장이라는 이름이 주어졌다. 그날 이후 매일 새벽 나는 이름도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했다. 내가 하려해서 그랬던가 보다. 너는 원래 자격도 능력도 없는데, 다만 그곳에 가만히 있으면서 내가 하는.. 더보기
새로운 항해 신혼의 단꿈에서 깰 틈도 없이 회사를 그만두었다. 아직 덜 깨었는지도 모르겠다. 그저 취한 건지도 모른다. 하지만 의지와 능력의 문제가 아닌 성향과 색깔의 문제였다. 내가 나를 속이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제 나만 생각할 수 없다고 느꼈다. 대책과 정해진 길이 어디 있겠는가. 그 사이 수십여 곳에 이력서를 넣었다. 인천에도, 부산에도 저 멀리 남도에도 넣었다. 그리고 새벽기도회에 나를 밀어 넣었다. 그 날, 땀과 함께 뿌린 씨앗에 아무 열매 없을 수도 있다는 말씀이 담담하게 나를 맞이했다. 많은 것을 쏟아 넣으면 최소한 의미있는 어떤 것은 얻으리라는 것에 아무 의심도 없었는데, 그렇지 않을 수 있다...수긍하고 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시도할 수 있다는 생각은 또.. 더보기
혹시나 해서 서점에 들렀다. 때로 눈앞에 많은 단어들이 떠올라 머리속이 참 번잡하다. 그럴 때마다 그들을 잘 엮어 한 문장 만들면 좋겠다고 생각하지만, 끝까지 엮지 못하고 그 때의 감상까지 잊고 만다. 어찌됐건 생각이 많은 건 사실이고 글쓰는 일을 하지 않은 것이 다행이라고 깨닫는 순간이다. 지금도 "그 때"의 생각을 뒤지느라 바쁘다. 머리속이 미로 같고 이따금 부딪히는 상념들이 내 일을 방해한다. 참 별 것 든 것도 없으면서 어디에 숨겨 놓는 건지, 간신히 꼬리를 잡아도 금새 몸통을 감춘다. 중요한 순간은 기억나지 않는다는 뜻이다. 혹시나 해서 서점에 들렀다. 창원에서 제일 큰 곳이라 한다. 습관처럼 많은 책들을 만져보고, 제목을 읽어보고, 두 세 페이지를 넘겨본 후 돌아 나왔다. 나의 독서는 늘 이런 식이다. 지식보다 감흥을 찾.. 더보기
귀가길 상념 아직 온기가 남아있는 도시락, 흰 쌀밥을 꼭꼭 씹으며 '내가 왜 죽어'라고 곱씹었다. 기차 출발 10분 전까지 택시가 잡히지 않아 오늘 밤도 출장지에서 보낼 지 모른다는 아쉬운 예감이 들었을 때였다. '이거 참 어렵네. 그만 둘까'하는 생각이 습관처럼 떠오른 것은. '그만 둘까 모든 걸.' 암울한 것은 어둠처럼 순식간에 나를 가둔다. 이론도 근거도 없지만 지금까지 어김없이 내게 나타난 증상이다. '그만 둘까.' 책임감과 무감각함을 임시방편으로 삼아 꾸역꾸역 서른을 맞이한 나로서는 항상 든든한 누군가가 참 부럽다. 결국 그런 사람들을 모방하면서 살아 가는 걸 부정할 수가 없다. 사실 이렇게 글을 쓰다 보면 어떤 희망적인 것이 결론으로 기다리곤 한다. 그리고 내심 그런 결론이 나를 맞이할까 기대하는 마음으로.. 더보기
김연아 파이팅 김연아의 대회 영상을 보다 문득 지난 대회가 떠올랐다. 정확하게는 지난 대회 영상을 바라보던 나의 모습이 떠올랐다고 해야할 것이다. 4년 전 이맘때라면, 새벽같이 친환경 물류 창고에 출근해 트럭에 식자재를 싣고 지역 곳곳을 돌아다니며 로컬푸드 운동을 하던 스물 여덟이다. 버스비를 아끼려고 10km 를 걸어서 출근하던 날들. 그 두 시간동안 영어 라디오 방송에 입을 맞추어 중얼거리던 어느 날, 오전 배달을 마치고 인터넷으로 대회 영상을 보며 가슴 졸이던 모습이다. 시골이라 영상도 자주 끊기고 화질도 엉망이었지만, 그 기억이 참 생생하다. 어제는 출장을 마치고 프리젠테이션 자료를 준비하느라, 대회 중계 영상 시간까지 잠못들고 있었다. 때마침 김연아의 대회 시간이라 대회 중계를 볼 수 있었던 것은 큰 행운이다.. 더보기
한 걸음만 내딛으면 지적 허영이란 단어가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배우고 싶어서, 궁금해서 뒤적이던 책장이 무겁고 날카롭게 느껴졌다. 연휴 첫 날 찾아간 그 넓은 서점에서 책장을 뒤적이지 않은 곳이 없었다. 냉정하게 말하자면, 관심있는 분야가 없었던 것이다. 이제 외롭다던지 우울하다던지 따위의 말은 않겠다고 했다. 내 글에서도 그런 투의 문장은 지우려 한다. 습관처럼 적어온 글들이 내 생각과 행동을 위축시킨 것 같다. 매달리고 달려들어도 겨우 하나씩 풀릴까한 일들 앞에서, 이전의 물렁한 생각은 가당치 않다. 정보통신분야에서 한참동안 서성였다. 컴퓨터 언어가 궁금하고, 네트워크가 궁금하다. 엑셀 아웃룩같은 툴에서만 맴돌다가 괜히 큰 거 건드는 건 아닌가 싶지만, 어쩌면 내 가는 길에 좋은 영향을 줄 것만 같다. 그 외에 관심.. 더보기
하나도 우스꽝스럽지 않다 정기 검진을 받으며 보통의 키와 보통의 몸무게, 보통의 시력과 조금 낮은 혈압을 진단받고 특별한 일 없네하며 돌아섰다. 추가 진단은 얼마요 하는 여의사의 말도 그냥 그렇게 받아들고 장사 잘하네하며 돌아온 것 뿐이다. 별 문제야 있겠어, 특별한 일 없네 하며. 뭐 특별한 일 없을까 찾아보는 게 일종의 욕심이다. 새로운 것, 그동안 못해본 것, 내가 하면 잘 할거 같은 것, 눈에 띌 만한 것. 마치 그것까지 있어야 삶이 완성될 것처럼, 현실을 미완성, 특별하지 않은 것으로 여긴 것이다. 그러다 오늘이 왔다. 정확히는 사랑챔버와의 만남이 닥쳐왔다. 사랑챔버에서는 칠십여명의 장애인들이 모여 클래시컬 음악을 연주 한다. 발을 구르며 연주하고 눈을 감고 노래 한다. 자리를 못잡고 무대 밖으로 나오기도 하고, 객석을.. 더보기
나비 넥타이를 맨 버스기사 굳이 버스기사 아저씨라 할 것도 없이, 그도 나도 생활 전선에 있는 하나의 사회인이다. 하루 중 대부분 앉아 있는 장소가 다를 뿐, 서로 아저씨라 부를 바에는 차라리 호칭을 않는 것이 낫겠다. 하여간 며칠 전 마을버스에서 조금 다른 기사님을 만나고 오랜만에 웃었다. 사회생활 시작하고 참 오랜만이다. 집에서 회사까지 2킬로미터. 걸어서 25분 걸리는 지척에 살면서 버스를 탄다는 것이 자랑할 일은 아니지만, 퇴근길 몸이 천근만근처럼 느껴질 때 주로 서초18번 마을 버스를 타고 집에 간다. 버스도 누군가의 일터인지라, 늦은 시간 일꾼의 지친 손길에 휘청이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 여기며 흔들흔들 서있는다. 그날 버스에 오르며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기사님의 정갈한 머리 매무세와 나비 넥타이였다. 그가 미처 궁금..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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